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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 '우끼시마마루' 폭침사건"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8/29 [07:29]

북,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 '우끼시마마루' 폭침사건"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8/29 [07:29]

 

▲ 우끼시마마루호. 사진=조선중앙통신  © 플러스코리아

 

▲ 우끼시마마루호 폭침. 사진=조선중앙통신  © 플러스코리아

 

조선인학살음모의 산물-《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일제가 감행한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으로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때로부터 70여년세월이 흘렀다.

1945년 8월 22일 일제는 고향에 보내준다는 거짓말로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을 아오모리현 오미나또항에 정박한 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 태웠다.

일제는 3 700여명의 조선사람들을 태운 배를 처음부터 조선의 부산항으로가 아니라 해안을 낀 남쪽방향으로 항행시켰다.

8월 24일에는 마이즈루항부근에서 이미 설치되여있던 폭약을 터뜨려 배를 침몰시킴으로써 조선사람들을 무참히 수장하였다.

사건발생후 함장을 비롯한 일본반동들은 배가 기뢰에 부딪쳐 침몰된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였다.

수송선의 이전 승조원은 배가 출항시에 얼마되지도 않는 연료를 가지고 떠났다고 하면서 《우끼시마마루》가 애초에 부산항까지 항행할 계획이 아니였다고 증언하였다.

더우기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는 항로는 기뢰해제가 끝난 안전항로였다.

당시 이곳 항구에는 1 000t급 배들이 500여척이나 있으면서 때없이 항만을 드나들었다.

그 정도로 안전하던 길에서 우리 동포들이 탄 배가 기뢰에 걸렸다는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납득될수 없는것이다.

당시 참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재일동포 서봉아, 권상길은 배가 가라앉을 때 조선사람으로서 일본해군의 헌병노릇을 하던 백모라는 사람이 갑판우로 뛰여나와 《일본놈들이 화약을 터뜨려 배를 가라앉게 하였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물속에 뛰여들고 뒤따르던 일본해군 세명이 《저놈을 잡아죽여라.》고 소리치며 그를 추격한 사실에 대해 증언하였다.

이것은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 패망에 대한 앙갚음과 함께 조선인강제련행자들을 마소처럼 부려먹은 죄행을 가리우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꾸민 조선인대학살음모의 산물임을 명백히 립증해주고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야말로 세계력사에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마들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일본이 과거 우리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온갖 반인륜적만행들중에서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는 40여년간에 걸치는 식민지파쑈통치기간 100여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고 840만여명에 달하는 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침략군의 성노예로 끌고다니며 그들의 정조를 참혹하게 유린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문화재보들을 수없이 파괴략탈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오늘까지도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을 《기뢰에 의한 우발적인 침몰사고》라고 우기는 등 과거에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저들의 온갖 특대형범죄행위들을 집요하게 부인하고있다.

이것은 과거범죄의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며 침략의 전철을 다시 밟으려는 일본특유의 파렴치한 술책이다.

일본은 과거의 죄행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것이 아니라 그 진상을 철저히 조사, 공개해야 하며 책임있는자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조치와 함께 그에 따르는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본이 전범국, 반인륜국가의 치욕스러운 오명을 씻는 길이 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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