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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실화] 새롭게 알려진 발해시기의 금귀걸이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8/12 [19:03]

[조선력사 실화] 새롭게 알려진 발해시기의 금귀걸이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8/12 [19:03]

 

▲ 발해시대 금귀걸이. 사진=조선의 오늘     © 플러스코리아

 

새롭게 알려진 발해시기의 금귀걸이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유물들에는 천년강국 고구려의 계승국이였던 해동성국 발해의 유적유물들도 많다.

그중에는 고구려의 귀걸이형태를 그대로 계승한 금귀걸이도 있다.

지난해 회령시 궁심동에서 발해시기의 무덤들을 발굴하면서 많은 유물들을 찾아내였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이채를 띤것이  발해시기의 희귀한 금귀걸이이다.

금귀걸이는 돌관무덤에서 사람의 머리뼈와 함께 발견되였다.

금귀걸이는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 드림장식으로 되여있는데 굵은 고리에 가는 고리를 끼우게 되여있으며 이 가는 고리에는 6각추형의 드림장식이 달려있다. 굵은 고리는 얇은 순금판을 둥글게 말아 원통형으로 만들고 가는 고리는 금동으로 만들었으며 드림장식은 순금으로 만들었는데 6각추형의 장식이 구형의 장식밑에 달려있다.

금귀걸이의 전체 높이는 4.3cm이고 굵은 고리의 직경이 1.1cm이다.

이처럼 높은 세공술을 보여주는 희귀한 금귀걸이는 발해시기의 유적인 화대군 정문리 창덕무덤떼에서 발굴된 금귀걸이와 형태가 꼭같다.

발해시기의 금귀걸이는 모두 태환식금귀걸이(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로 이루어진 금귀걸이)들로서 고구려의 태환식금귀걸이와 형태와 류사하다.

고구려의 금귀걸이는 대부분 태환식금귀걸이로서 대표적으로 대성구역 안학동, 룡강군 룡흥리, 대동군에서 나온것을 들수 있다. 신라와 가야에서 나온 금귀걸이도 대부분 고구려의것을 본따 태환식금귀걸이로 되여있다.

금귀걸이는 발해시기의 높은 세공술과 함께 발해의 문화가 고구려의 우수한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이다.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적발굴대 대장 차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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