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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13)-한민족사회의 정치․경제․문화․환경 등 제반 문제들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7/22 [06:59]

옛날옛적에(13)-한민족사회의 정치․경제․문화․환경 등 제반 문제들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7/22 [06:59]

 

▲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양민학살. 사진=신천군에서 미군의 악행.     © 플러스코리아

 

▲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만행. 영화 한장면     © 플러스코리아

 

1) 왜곡된 정치

 

   한민족사회의 비극적 모습은 왜구침략기로부터 약 백년간에 걸쳐서 왜곡된 정치적 현상들로 나타났다. 왜구가 물러간 후에도 악화일로로 치달아 간 민족분열 및 동족상잔의 비극은 한 때(50여년간) 초강대국들의 세계적 냉전때문에 빚어진 약소민족의 설움정도로 무리없이 설명되었던 때도 있었으며, 또한 그러한 설명들이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도 한다.

 

   즉, “초강대국인 미국과 쏘련의 조종을 받고 있는 국제적 관계에서 미국과 쏘련이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는 한 한민족은 가엾게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민족통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한민족의 분단상태는 독일과는 다른 문제로서, 주변의 전 유럽인들이 원치 않았던 전범국가 독일의 통일문제와는 달리 한민족은 단지 미국과 쏘련의 적대적인 대립만 해소되면 그에 따라서 자연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원상복귀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기때문에 문제는 더욱 착잡하게 꼬여갔다고 한다.

 

   동서 독일의 통일은 물론이고 미국과 쏘련간의 화해도 이루어졌으며, 더우기 쏘련은 자체내 소수민족들의 자립열망에 의하여 러시아 및 몇 개의 나라들로 나뉘어 그 막강하던 위력을 상실해버렸는데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여전히 민족분단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분단지속상태를 단순히 외세의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리라.

 

   그렇다!

   민족분단의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민족내부에 존재하는 분열적 요인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독일이 미쏘간의 화해시기를 적절히 이용하여 재빠르게 통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도이취민족으로서의 한결같은 자부심을 지닌 독일인들의 열망이 일관되게 통일을 염원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민족은 같은 세계사적 화해조류를 독일인들처럼 적절히 이용하지 못한 채 엄청난 통일비용이니 남북간의 현격한 체제적의식적 차이따위나 주절대면서 그 동물농장적인 현실에 막연하게 안주하려고만 했으므로 통일로 나아가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썩어빠진 정신상태를 가지고서는 제 아무리 더 좋은 국제적 여건들이 마련되었더라도 통일은 결코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 아니던가?

 

   잡다한 반통일논리의 걸작들 중에는

  ‘한민족이 통일되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깨지므로 위험하다

는 것도 있었다. 그런 주장은 주로 외국인들이 제시하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외국인들에 대해서 어떤 지도자도 주의를 주거나 의례적인 외교적 대응이라도 하는 법이라곤 없었으니, 말하자면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의견에 부응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민족의 피를 말리는 분단상태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라는 것은, 도대체가 한민족을 위하여 이루어진 세력균형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균형이 언제까지고 깨지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는 자들이 소위 민족지도자라고 큰소리치고 있었으니 민족의 장래가 암담할 뿐이었다.

 

   진실로 한민족을 위한 세력균형이란 한민족의 국가적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 거기에 맞추어서 재편성되는 세력균형이어야만 했다. 그러니 한민족의 분단상태를 이용해서 톡톡히 이익을 보고 있던 자들이 국내외에서 얼마든지 판칠 수 있던 그 암담했던 시절은 한민족의 암흑시대였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미군의 악행     © 플러스코리아

 

2) 사기꾼들이 판쳤던 경제

 

   우리 한민족사회는 전통적으로 경제를 중요시했었다.

 

   그런데 전통적인 한민족사회에서의 경제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경국제세(經國濟世)’, 나라를 바르게 운영(경영)하고 인간세상을 건지는 올바른 방도를 뜻하는 것이었지, ‘돈벌이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구들이 이 용어를 대체로 돈벌이라는 뜻으로만 써먹기 시작한 이래, 왜구들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당시의 한민족도 어느 사이엔가 같은 뜻으로 써먹게 된 것이었다.

 

   경제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많은 문젯점들을 드러내고 있었던 남한을 예로 들어 보면 8.15 이후, 특히 군사쿠데타로 일본제국주의의 첨병이었던 관동군 정보장교 출신의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군사독재정권이 소위 개발독재라는 것을 강행하면서 모든 돈벌이행위는 경제행위로 인식되었고, 전통적인 경제의 개념과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용어자체가 엉망이 되어 버렸으니 사실상 경제라는 용어를 가지고는 더 말할 것도 없게 되어 버렸지만, 순전히 돈벌이라는 의미에서만 그 용어를 써 본다고 해도 경제적 성공을 했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고 한다.

 

돈벌이란 무엇인가?

   벌어들이는 돈이 나가는 돈이나 빚을 제하고도 남아야 돈벌이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빚을 월수입의 4배 가량이나 지고 있으면서 매월 그 빚에 대한 이자를 갚아 나가기에도 급급한 사람이 수입과 지출이 같을 때, 그런 것을 가지고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수입보다 지출이 항상 더 많이 발생할 때, 그건 돈벌이가 아니라 손해보는 장사라고나 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빚을 10배가량 더 늘림으로써 살림규모를 더 크게 하고 수입과 지출규모를 더욱 확대시킨다고 해도 결과는 여전히 빚만 더 늘고 여전히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것일 뿐이 아닌가?

 

   한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경제논리가 성립될 수밖에 없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 외채(외국 ’)를 수백억달러씩이나 끌어들여서 온갖 공장나부랑이들이나 잔뜩 벌여놓고서 장사라는 걸 한다는 게 거의 늘상 수출보다 수입이 매년 몇 억달러 내지 몇 십억, 심지어는 몇 백억달러씩이나 더 많은 헛장사를 하고 있었으니, 나라가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약간의 무역흑자라도 날만하면 상대방(미국 등) 나라들은 그 즉시 보호무역조처를 강화하면서 이 쪽에 대해서는,

  “한국시장을 더 자유롭게개방하라.”

고 은근히 협박공갈을 하면서 값싼 저네들 상품을 마구 쏟아 놓는 판이었으니, 그것은 사실상 무역도 아무 것도 아닌 일방적인 착취행위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신식민지정책의 현실적 귀결이었다고나 볼 수 있으리라. , 그것은 무역을 가장한 일방적 수탈행위였으며, 하나마나한 거래관계였던 것이다.

 

   가관인 것은 그나마 막대한 외채위에 세워진 그런 공장들이라도 가지고 있던 재벌(지금은 사전에나 남아 있는 옛 용어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들은 자기들만이라도 먹고 살겠다고, 또는 더 나아가서 자기들이 살아야만 국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나발불어 대면서, 국제경쟁력도 별로 갖추지 못한 시원찮은 공장제품들을 외국시장에 싼 값에 팔아보려고, 한민족의 마지막 소중한 희망이자 민족생존에 가장 중요한 전략산업이기도 했던 농업마저 완전히 희생시켜 버렸던 점이다.

 

   비교우위론을 들먹이면서 외국(주로 미국’ :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미 20여년 전에 인종갈등을 비롯한 내분으로 인하여 수십개의 소규모 국가들로 분열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의 미국은 전 세계에 군림하던 골목대장 같은 나라였다고 한다)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떠들며 국내농업을 파탄지경에 몰아넣던 재벌들과 그 일당들(소위 경제전문가’ ; 물론 어용이었지만), 공업제품마저 외국에서 더 싸게 만들어 내어 경쟁력을 잃게 되자, 이번에는 저개발국가들의 노동자들을 싼 임금으로 마구 불러 들여서 자신들이 해고해 버린 동족의 일자리를 넘겨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만 살겠다는 본색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외국인들을 고용해서 벌어 들인 돈이 한민족사회를 위하여 그 무슨 도움이 되었을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번 돈을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기에 바빴을 뿐인 것을

 

   문제는 그나마 그러한 파행적인 경제운용이나마 한민족이 스스로 선택해서 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외국(주로 미국과 일본)에 의한 국제적인 구조적 착취선상에 놓여있었다는 데 그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 아무리 한민족의 지도자들이 정신차리고 잘 해 보겠다고 애써 봐야 결국은 외국인들의 마수에 걸려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것은 결국 진정한 민족해방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당시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신명을 바치려 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 조종자(국제적 다국적기업)들의 허수아비 노릇을 즐겨했던 것이니

 

 

▲ 중공의 56개 소수민족 문제들     © 플러스코리아

 

3) 수렁에 빠졌던 민족문화

 

   한민족의 문화 - 그것은 오늘날 인류역사상의 하나의 경이라고까지 극찬되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젊었던 그 시절의 한민족에게는 민족도, 민족문화도 제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처럼 민족적인 모든 것이 말살되어 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선 왜구들의 극성스런 한민족말살정책에 있었다고 하는데, 왜구들이 일단쫓겨 간 후에도 상태가 좋아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일로로 나아갔다고 한다. 그것은 민족적 특성을 극단적으로 부인하며 적대시하는 두 초강대국(당시로서는 미국과 쏘련물론 이미 둘 다 세계사에서 사라져 버린 나라들이지만)이 한민족을 국제법상의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남북으로 나누어 지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당시에 유명하던 대학살자 스탈린이 지배하고 있던 쏘련을 사회주의모국으로 삼는 (민족을 초월한) 국제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서는 어제의 친일파들이 친미파로 둔갑한 (반민족적 해바라기성) 전천후 외세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입지(立地)를 곤란하게 만들 우려가 짙은 민족중심적 사회양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러한 전통적 생활양식은 곧잘 시대에 뒤진 것’, ‘야만적인 것’, ‘봉건시대의 유물따위로 선전되었으며,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세뇌교육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천년간 전해져 온 민족문화와 전통이란 그같은 세뇌교육을 통해서 간단히 없어질 수 있는 단순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처럼 민족문화가 말살되어 가고 핍박받는 극한 상황하에서는 그에 대한 반발도 커지게 마련이어서, 민족문화와 전통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그러한 세뇌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대오각성으로부터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의 품성(인격)이라는 것이 유아기의 교육으로부터 결정지워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민족정신 함양의 의미를 망각했던 얼빠진 지도자들이 저급한 외래문물만을 높이 평가하며 그 수입에 열을 올린 지 반세기 가량이 지나자, 한민족은 사실상 신체(유전자)적인 특징만 간신히 조상들과 닮은 껍데기만 남은 얼간이민족으로 급격히 퇴화되어 갔다고 한다.

 

   외래문물이란 실상은 몇가지 가뭄에 콩나듯한 사상적 경향이라는 것들 이외에는 각종 공장제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 쓸만한 사상적 경향이라는 것들도 대부분 한민족사회에서는 이미 전통적으로 생활화되어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공장제품들이란 대부분 인간의 정서와 건강과 환경을 해치는 유해한 쓰레기들에 불과했다고도 한다.

 

   그처럼 하고 많았던 외래문물 중에는 수입농산물이라는 걸작도 있었다고 하는데, 수개월 내지 수년동안 변질되지 않게 하려고 다량의 독성살충제나 방부제 등을 마구 발라놓은 수입농산물들은 여러가지 난치성 암이나 내분비계질환들을 비롯한 숱한 질병과 수명단축의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생명체들에는 해롭고 인간의 생명에만 해롭지 않은 독극물이란 있을 수가 없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농약이 개발될 때마다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은 획기적 제품이니, ‘인체에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인 제품이라는 광고문구들이 각종 보도매체들을 떠들썩하게 만들곤 했다고 한다.

 

   그런 괴상한 쓰레기같은 외래문물들과 함께 외국의 정신적 쓰레기들도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인간의 기본적 생활규범이 뭔지도 모르는 황금만능의 외부세계로부터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서 한민족사회의 정신적 뿌리마저 흔들고 뽑아 치우려 했던 그러한 정신적 쓰레기들도 이름만은 고상하게 신사조(新思潮)’, ‘세계적 첨단유행이니, ‘진보적 행위예술이니, ‘참신한 새세대(X세대)의 도전이니 하여, 만일 그러한 조류에서 조금이라도 뒤지기라도 했다가는 곧장 인류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기라도 할 것처럼 야단법석들을 떨었다고 한다.

 

   특히 진보라는 용어는 마치 멋진 신세계를 실현하는 절대적 가치인 양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쓰였다. 그러나 소위 진보주의자들임을 자처했던 ‘386운동권 출신자들과 그들의 온갖 과장된 선전공작들을 이용하여 당선되었던 세 명의 진보적 대통령들의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같은 망동작태들을 목격하고 크게 곤경을 치른 이후에는 아무도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 정권 막판에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이승만 시대의 3.15 부정선거를 몇 단계나 업그레이드한 4.15 부정선거라는 막장극까지 연출했다가 결국 분노한 대다수 국민들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쳐 그 막강해보였던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처럼 고상한 진보라는 명분하에 쏟아져 들어왔던 쓰레기들은 실제로는 발광하듯한 음란한 춤’, ‘치골(恥骨)과 항문(肛門)이 드러날 듯한 미니스커트’, ‘남녀의 구별조차 불가능한 괴상한 옷차림’, ‘급증하는 미혼모’, 그에 덩달아서 급증하는 사생아들과 버려진 사생아들’, ‘폭력강도강간절도 등의 난무’, ‘유괴 및 인신매매 범죄조직의 창궐’, ‘마약과 환각제의 범람’, ‘각종 정신병의 확산등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저 가련한 정신대 할머니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설쳤던 소위 정의기억연대같은 진보를 자처한 일단의 페미니스트무리들은, 할머니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각종 국가적 지원금들과 후원금들을 갈취하는 후안무치한 망동을 자행함으로써, 참다운 문명사회를 원하는 국민들로부터 앵벌이갈취단이라는 분노에 찬 조소를 받고 역사의 쓰레기통속에 처박혀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 ‘새로운 문명이라는 휘황찬란한 조명무대의 막후에서는 참다운 인류문명과는 거리가 먼 반문명(反文明)적인 온갖 야만의 쓰레기들이 코를 찌르며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에 사람들을 현혹했던 새로운 문명이란 야만으로의 퇴화를 의미하는 다른 이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 미국 백인우월주의,세계 최악의 인종차별집단 KKK.     © 플러스코리아

 



4) 자기 목을 졸랐던 환경문제

 

   환경문제 - 이거야말로 야만화한 서기 20세기의 인류가 빚어내었던 졸작들 중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심각했던 졸작중의 졸작이었다. 지구의 안과 밖은 모두 광범위하게 오염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지구가 얼마나 극심한 오염에 시달렸는가 - 하는 것은 지구수호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환경정화작업을 벌인 지 80여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강바닥에 깔려 있는 각종 오물찌꺼기들의 잔해가 말해주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아직도 바다위에 떼지어 다니다가 정화작업반에 의하여 수거되곤 하는 빈 깡통빈 병비닐조각 등이 그 더럽던 시절을 악몽처럼 되살아나게 해 주고, 무엇보다도 쓰레기들 중의 쓰레기인 저 녹쓸어 버린 자동차들의 거대한 잔해들은 도시 주변 곳곳마다 아직도 주위의 경관을 망치면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 황당하던 시절을 어렴풋이나마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게 해 주고 있다. 아무리 우리들에게는 비교적 가까운 할아버지 시대의 일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인간들이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었을까?

 

   환경문제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물만을 예로 들어 본다면, 우선 식수로 쓰는 우물에다 음식찌꺼기와 대소변을 쓸어 넣는다. 그리고는 그 물을 깨끗하게마셔보겠다고 다량의 발암성화학약품들을 퍼 넣고, 바닥의 찌꺼기들을 긁어내며, 정수기를 비싼 값으로 사들여서 다시 그 물을 마신다. 그 다음에는 다시 거기에다가 다른 오물찌꺼기들을 쓸어 넣는다. 그리고서는 다시 정수시설에서 그 하숫물을 걸러서 마시느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으시시한 공상과학소설의 소재나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수백년간이나 벌어졌던 것이다. 공기건 식품이건 당시의 오염이란 모두가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경문제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지구오염문제의 책임은 전적으로 당시에 지구의 관리자임을 자처했던 모든 인류에게 있었다.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거나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생존을 일거에 위협할 수 있는 공해를 야기시킨 존재는 지구의 역사 이래 부끄럽게도 인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이미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인류는 그 당시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일부 광신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주장해 왔던 것처럼 지구의 관리자는 결코 아니다. 인류란 단지 지구를 보존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지구의 수호자일 뿐이다. 그러나 당시의 인류는 지구를 수호할 생각보다는 주제넘게도 지구를 노예로 부려먹을 욕심만으로 가득찬 악독한 착취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지구라는 혹성은 인류라는 몹쓸 기생충들에 의하여 그 생명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 기생충들은 지구의 몸체를 파먹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력을 시들게 하는 독가스와 독성강한 배설물들을 뿜어대기까지 했었다(당시에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에어리언이라는 영화에 등장시켰던 괴물들은, 바로 지구를 악랄하게 착취하던 당시 인류의 모습이나 진배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뿜어내는 그런 독성물질들에 의하여 스스로의 생명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잡다한 오염과 환경파괴의 결과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백여년 전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에 걸쳐서 범세계적 대규모 전염병 유행으로 인하여 인류는 자신의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 당시의 인류란 자기자신을 포함하여 생명력을 가진 모든 존재들을 함께 말살시켜 가려는 극도의 파괴적 성향을 지닌 일종의 정신분열증에 걸린 지극히 위험한 괴물들이었던 것이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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