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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북에 단군릉이 웅장하게 건설된 경위에 대해 알고싶어요"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09 [09:58]

[조선력사] "북에 단군릉이 웅장하게 건설된 경위에 대해 알고싶어요"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09 [09:58]

 

▲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릉선마루에 조성된 단군릉.자료사진     © 이형주 기자

 

단군릉이 웅장하게 건설된 경위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어린시절 력사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평양의 교외에 있는 단군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단군릉이 오늘과 같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 경위에 대해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한보라 – 인천 – 자영업)

 

답 –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의 무덤인 단군릉은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릉선마루에 자리잡고있습니다.

원래 력사학자들은 단군이 신화적인물이라는 기성관념에만 사로잡혀 단군릉을 발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지니시고 우리 민족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찾아주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오신 위대한수령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날 그릇된 력사관에 의하여 이지러진 민족사의 수많은 사건들과 사실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도록 하여주시였으며 력사학자들에게 단군연구를 심화시킬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바쁘신 가운데서도 그 연구정형을 알아보시면서 여러차례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습니다. 특히 주체82(1993)년 1월에는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도 발굴해보도록 학자들의 눈을 틔워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래동안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단군릉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여 그해 2월에 단군의 유골과 유물이 발굴되게 되였습니다.

언제나 주체적립장에 튼튼히 서시여 우리 나라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깊이 통찰하여오신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는 단군유골의 발견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그 실체를 정확히 밝힐수 있도록 최신기술수단과 기술력량을 아낌없이 보장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발굴당시(1993년) 5011(±267)년전에 태여난 실재한 인물이였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단군의 유골이 발굴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원시조를 찾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오랜 력사국이며 우리 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하나의 혈통을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동방에서 처음으로 선진문명에 들어선 문명한 민족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또한 평양은 우리 민족의 성지이며 우리 민족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고 발전하여왔다는것을 립증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위대한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인 단군의 유골과 유물을 찾게 된것은 우리 고고학의 대승리라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단군이 평양일대에서 태여나 여기에서 나라를 세우고 생을 마쳤다는것이 확증된 조건에서 평양일대에 원시조의 무덤인 단군릉을 개건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습니다.

 

주체82(1993)년 9월 27일 위대한수령님께서는 팔순고령의 몸으로 강동땅을 찾으시여 앞이 훤히 트인 대박산기슭의 야산마루우의 명당자리에 개건할 단군릉터를 잡아주시고 단군릉을 시조릉답게 꾸릴 설계도를 환히 펼쳐주시였습니다.

위대한수령님께서는 단군릉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의 무덤답게 동명왕릉보다 더 높고 크게 돌로 계단식으로 쌓아야 한다고 하시며 개건할 릉의 규모와 형식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밝혀주시였습니다. 주체83(1994)년 7월 6일에는 겹쌓인 피로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단군릉의 최종형성안을 보아주시고 빨리 건설하여 남조선과 해외동포들도 다 와보게 할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습니다.

위대한수령님께서 바라시던대로 단군릉이 빠른 기간에 웅장하게 일떠서게 된데는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습니다.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시려는 가장 의리깊은 충성심과 철의 의지를 지니시고 단군릉을 로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창조물로 최단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로 단군릉복구위원회를 무어주시였으며 릉건설에 강력한 력량을 인입하고 막대한 자재와 설비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도록 하여주시였습니다. 또한 단군릉이 후세에 길이 전할 기념비적건축물이 되게 시대성과 전통적민족풍습의 관례를 잘 살려 건설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독특하고 웅대한 단군릉은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지금과 같이 훌륭히 건설되게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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