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북 '첫 녀자태권도선수 황미영 태권도선수단 부단장'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5/27 [03:32]

북 '첫 녀자태권도선수 황미영 태권도선수단 부단장'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5/27 [03:32]

 "공화국의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태여나 녀자태권도최강자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조선태권도위원회 태권도선수단 기술부단장 황미영녀성도 있다."고 조선의 오늘에서 27일 소개하였다.

 

▲ 황미영 태권도선수단 부단장의 제자 신수옥감독.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 황미영 태권도선수단 부단장.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다음은 보도 전문.

 

공화국의 첫 녀자태권도선수

 

태권도는 《천리마》라는 말처럼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말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만큼 태권도의 모국인 우리 공화국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태권도강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가운데는 공화국의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태여나 녀자태권도최강자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조선태권도위원회 태권도선수단 기술부단장 황미영녀성도 있다.

그는 공화국의 첫 녀자태권도선수이다.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체육선수후비로는 머리가 좋고 육체적준비도 좋으며 종목별선수로서의 적성체질을 갖춘 대상들을 선발하는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영이는 공부를 잘했고 음악과 체육에서도 뛰여난 재간을 가지고있어 동네사람들은 그를 두고 훌륭한 예술인감, 체육인감이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미영이 부모들의 생각은 착잡하였다.

(음악을 시킬것인가 아니면 체육을 시킬것인가?)

그러던 어느날저녁 부모들은 딸애의 장래문제를 놓고 토론하던 끝에 미영이를 배구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중학교(당시)를 졸업한 미영이는 4.25체육단 배구선수가 되였다.

체육단에서 배구훈련에 열중하던 그때 미영이는 뜻밖에도 태권도에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였다.

그 시기 공화국에서는 태권도의 급속한 발전을 위한 국가적인 조치에 따라 태권도적성체질을 가진 후비들을 선발하는 사업이 진행되였는데 그의 영민하고 뛰여난 운동감각이 선수선발사업에 동원된 태권도전문가들의 이목을 끌게 되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황미영을 비롯한 14명의 처녀들이 공화국녀자태권도의 첫 세대로 되여 그해 주체74(1985)년 11월부터 백명철감독의 훈련지도를 받게 되였다.

감독은 처녀선수들에게 태권도의 기본동작과 틀을 체득시키는데 기본을 두면서 육체훈련의 강도를 높이였다.

이 나날에 녀자태권도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며 훈련에 열중하였다. 동료들속에서 이악쟁이로 소문난 미영선수는 자기의 특기동작을 숙련하기 위해 하루 1 000번이상의 타격훈련을 진행하면서 훈련장에서 더 많은 땀을 흘리며 낮과 밤을 보내였다.

어떤 때에는 남자선수들과의 맞서기훈련과정에 3차례나 심한 부상을 당하여 병원으로 실려갈 때도 있었지만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엿한 태권도선수로 성장한 황미영을 비롯한 처녀태권도선수들은 제5차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조국의 영예를 떨치였다. 특히 미영선수는 금메달 3개를 쟁취하여 우리 나라선수단이 나라별종합순위 제1위를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제6차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5개, 제7차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쟁취하였으며 제13차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최우수감독상을 수여받았다.

나라에서는 3차례의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개의 금메달을 쟁취하여 조국의 존엄을 세계만방에 떨친 그를 인민체육인으로 내세워주었고 주체94(2005)년에는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의 값높은 칭호도 안겨주었다.

그후 그는 조선태권도위원회 태권도선수단에서 기술부단장으로 사업하면서 자기의 모든 꿈과 희망을 꽃피워준 그 사랑과 믿음을 가슴에 새기고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다 바쳐 지금까지 수많은 태권도선수들과 감독들을 키워냈다.

 

조선태권도위원회 태권도선수단에서 감독사업을 맡고있는 사옥진, 한정애, 리춘희들도 다 그가 키워낸 감독들이며 전국각지의 태권도선수단에는 그가 키운 제자들이 감독으로 임명되여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있다.

이들중에는 선수생활기간에 23개의 금메달을 쟁취한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이며 인민체육인인 사옥진감독도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여나 태권도라는 말조차 모르던 한 처녀의 자그마한 재능의 싹을 귀중히 여겨 녀자태권도강자로 내세워준 고마운 품이 있었기에 황미영녀성의 긍지높은 오늘이 있는것이다.

본사기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미식 여행지 고흥, ‘녹동항 포차’에서 추억을 쌓아요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