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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순직한 넋,'백산소도 굿' 위령제

백산도란 무엇인가? 단군전통문화에 대해 정부에서도 관심 가져야

김휘대 기자 | 기사입력 2010/05/06 [09:29]

천안함 순직한 넋,'백산소도 굿' 위령제

백산도란 무엇인가? 단군전통문화에 대해 정부에서도 관심 가져야

김휘대 기자 | 입력 : 2010/05/06 [09:29]
▲ 백산소도 '천안함 순국장병 국민애도 위령제 ⓒ 뉴스타운 김이수 기자     ©

 
▲ '천안함 순국장병 국민애도 위령제' 백산소도 굿 행사에서 북파공작원들이 애도하고 있는 장면. ⓒ 뉴스타운 김이수 기자     ©

▲ '천안함 순국장병 국민애도 위령제' 백산소도 굿이 시작되는 장면.ⓒ 뉴스타운 김이수 기자    


[김휘대의 세상 읽기] 백산 소도라는 민족 전래 굿 전통을 있겠다는 대한민국 해병대812망치 동지회라는 단체가 주관하고 뉴스타운이라는 신문사가 주최한 민족전통의 '백산소도 굿' 행사가 서울 인사동 남인사공원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 천안함 침몰로 산화한 장병들의 위령제로 진행되었다

3백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고구려시대의 전통의상을 입은 무녀들과 해병대 의상을 입은 812 망치부대 동지회 소속 대원들은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는데 서울시내에서는 고구려의상을 걸치고 고구려시대의 전통 굿을 시연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과 외국인들은 한국인들 보다 더 큰 관심을 보이는 듯이 하였고 많은 외국인들은 동영상을 정신없이 찍고 있었다.

국내인들 보다 외국인들 특별하게 유럽과 미국 쪽의 외국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아서 앞으로 정부차원의 고구려 민속 굿을 장려할 경우 외국인들에게 당당하게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 한 소재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준 획기적인 행사로 보여 졌다.

백산소도라는 것은 단군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고 그 소도의 굿 행사는 의복에서부터 특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고, 그 주제를 하는 도총관이라는 사람과 그 휘하20명의 무녀들은 굿이 진행되는 동안 죽은 병사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을 신 내림 상태를 보여주는데 숨이 넘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던 어느 무녀는 움직여 잃어서지를 못하여서 다른 사람이 부축하여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도총관이라는 무녀집행관은 힌 천을 길게 늘어놓고 시민들이 그것을 양쪽에서 당기도록 하는 그 중앙으로 천을 찢어가면서 죽어간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기도 하고 그들의 설음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거기에 폭 빠져 버리도록 너무나 감동적으로 굿을 진행하였다.

화장을 한 여성들의 고운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무녀들은 병사들로 변신하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아니 그녀들은 병사들로 변신하여 있었기 때문에 구경꾼들은 자신들이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 로 무녀들은 재현을 하고 있었다.

구경을 하든 많은 사람들은 무녀들이 장병들의 몸을 빌려 절규하고 슬픔을 표현 할 때는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소도 굿 행사는 감동적이며 진지했다.

그 자리에는 영문도 모른 체 북파특수 훈련을 받고 인간 병기가 된 812 망치부대 왕년의 특수부대요원들이 길게 늘어서서 행사에 동참하기도하고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그 유인물에 보면 아군이 보호 할 수 없는 nll(서해 남과 북이 서로 그어놓은 영해) 지역에 투입 명령이 떨어지면 "보이는 것은 다 죽여라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현재의 백령도 근처에서 nll 선상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고 쓰여 있다.

임무 수행을 마치면 국가가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으며 가혹하고 혹독한 북파특수훈련과 특수 임무수행으로 복무 중 순직 사망 부상 정신장애 불명예제대 등이 있었고 전역 후에도 소위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안고 사회적 약자로 곤고하게 살아가고 있다면서 다른 특수임무수행자들( 이들은 주로 본인의사로 간 사람들을 말함) 처럼 가스통에 불을 붙이지 못 할 것도 아니지만 막나가기 싫어서 집회신고를 하고 한다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하며 합리적인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만약 이런 행사를 정부에서 주도하고 그것을 방송과 언론를 통하여 전국에 방영을 하면 가엾게 죽은 영혼들을 완전하게 위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독교의 문화로 길들여진 한국사회에 커다란 파열이 생길 것이 두려운 정부에서는 국민들을 어떻게 잘 속여 볼까만 연구하는 것 같은 정황이 감지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     © 뉴스타운 김이수 기자    

▲     © 뉴스타운 김이수 기자

백산도란 무엇인가?

단군문화란 말은 생소한 단어이다. 불교문화라든지 유교문화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데 단군문화라고 하면 얼핏 들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단군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면서 단군문화를 모르고 있는 것인데 어딘가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문화는 태초에 단군문화였다. 그 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와 유교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고려시대는 불교문화가,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각각 전성기를 맞았다. 이렇게 불교와 유교문화가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을 지배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최초에 만들어 낸 순수한 민족문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잊어 버리게 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일제의 단군말살 정책으로 말미암아 단군조선의 실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8.15이후에는 기독교가 들어와서 이제는 불교와 유교 문화까지 잊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한국인은 이 지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민족문화란 그리 쉽사리 말살당하거니 지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교회(성당) 건물이다. 유교의 상징은 향교,불교의 상징은 절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곳이 물론 교회이고 다음이 향교이다. 절은 주로 산속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단군문화의 상징인 당나무(堂木)는 시골 마을에 예외없이 서 있어 눈에 잘띈다. 당나무는 수백년 묵은 노목(老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군문화를 상징하는 당나무는 지금도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음력 정월 보름에 꼭 제사를 지낸다. 이 날을 위해 나무에 금줄을 치고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 둔다. 당나무의 수종은 곳에 따라 다르나 대개가 느티나무이다. 당나무는 신이 하늘에서 강림한 신성한 나무이다. 그래서 그 옆에 신당을 치저 놓고 신을 맞이한다. 이 집을 당집이라 하며 나무를 당나무라 불러온 것이다.

그래서 엄격히 말하면 당목이 아니라 신목(神木)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당목의 유래는 마을의 유래와 같이 오랬다. 그 최초의 유래를 알려주는 기록은 유명한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조(古朝鮮條)에는 환웅이 이 신단수에 기도 드리면서 사랑을 고백한 웅녀의 소원을 들어 주어 두 사람 사이에 단군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이 신비스런 신단수는 마을마다 심어져서 5천년의 역사를 민족과 함께 살아왔다.

웅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준 신단수는 마을에서 마을로,고을에서 나라로 번져 나갔고 제사의 규모 또한 커져갔다. 하늘의 아들 환웅이 쉽게 강림하는 곳은 높고 은밀한 산이라 인식되었으므로 곳곳에 신산(神山)이 정해지고 신단수를 심었다. 이 신산을 이름하여 백산(白山)이라 하였고 실제로 환웅이 강림한 백두산(白頭山)을 태백산(太白山),즉 백산 중의 으뜸가는 백산이라 하였다.

이처럼 단군문화는 백산 신앙에서 유래했는데 뒷날 산신 신앙으로 와전되어 환웅 천신(天神)을 모시는 제사를 산신제로 잘못 기억하게 되었다. 대관령 산신제에서 그 옛날 고조선 때 거행됐던 제천(祭天)또는 천신제의 유습(遺習)을 발견할 수 있다. 천신이 강림하는 성스러운 백산은 소도(蘇塗)라 하여 성역화되었다. 소도에서 먼저 하늘의 아들을 강림하게 한 뒤 마을의 신당으로 모셔온다. 마을의 신당에는 웅녀가 기다리고 있다. 두 신이 서로 만나는 날 마을에서는 큰굿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줄다리기,씨름,그네뛰기,널뛰기,연날리기,활쏘기 등 갖가지 경기를 통해 한마음 한뜻임을 다짐한다. 이것을 국중대회(國中大會)라 했다.

또 이날 신나는 군악(軍樂)이 울려 퍼져 고요했던 강산에 북소리,장구소리,피리소리가 요란하다. 이 군악은 오늘날 농악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으나 본시는 병사들이 싸움터에 나가서 싸울 때 연주했던 행진곡이었다. 또 그것은 하느님이 아들 환웅의 강림을 축하하는 종교 음악이기도 하였다. 환인이 환웅을 지상에 보내어 단군을 낳아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한 민족사의 시작,단군조선의 건국을 축하한 오랜 국속(國俗)이 오늘의 소위 민족문화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국속은 단군조선에서 삼한으로 이어져 2천년 상고사를 일관하였으며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이 문화를 고이 간직하여 국풍을 진작하였다. 불교는 이러한 민족 고유문화와 타협하여 한국종교와 미륵신앙을 강조함으로써 비로소 이 나라에 뿌리를 박을 수 있었다. 유교 또한 이 나라의 국속을 무시하지 못했다. 도리어 한국유교가 되기 위해 민족의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유교문화를 만들어 나가야만 했다.

단군 문화의 핵심은 삼신(三神)신앙이었다. 환인(할아버지),환웅(아버지),그리고 단군(아들) 3대를 함께 모시고 이 분들이 늘 살아서 이 민족을 보호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삼신이 하늘에서 한집을 이루어 살아 계시듯이 이 지상에서도 우리는 할아버지,아버지,아들 3대가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 3대가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은 이산가족이요 민족문화의 근저를 파괴하는 것이다. 삼신은 늘 우리를 보살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하늘이 선택한 천민(天民)이며 그 군대는 천군(또는 천병)으로서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보우하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천민답게 살아야 한다. 홍익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즉 부모형제,그리고 친구와 이웃에 옳아야 하고 믿음스러워야 하며 나라를 위해서는 충성스러워야 한다. 또 싸움터에 나가서는 용맹스러워야 한다. 화랑의 세속오계로 알려진 이 덕목은 이 나라 이 민족의 영원한 계율이기도 한 것이다.

문화는 민족의 옷이요 의상이다. 5천년 역사를 통해 우리의 옷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흰 바지와 저고리,흰 치마와 저고리는 민족의 의상으로서 살아 남았다. 흰 쌀밥,흰 떡을 제상에 올려 놓고 삼신으로 상징되는 조상에게 절을 하고 그 가호(加護)를 빌면서 내일을 기약하는 단군문화는 온갖 외래문화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름아닌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111 10/05/06 [13:44] 수정 삭제  
  -아무니 쇼라 하지만 티나
사이비척결 10/05/08 [13:29] 수정 삭제  
  왜나라당보다 더 악랄한 넘들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가면을 쓰고 결과적으로 왜나라당의 푸들노릇하는 넘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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