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서의 스마트소설]
환승역
박준서
넥스트라이프 코치라는 소케트의 안내에 따라 토토 씨를 위시한 망자들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히터를 튼 것처럼 얼었던 몸이 금세 녹으며 뜨끈한 국밥이며 송편 인절미에 강정이며 반찬에도 신경 쓴 듯, 한 상 가득 성찬이 놓여 있었다. 그제야 망자들은 소태 씹은 얼굴에서 여덟 시 이십 분의 눈썹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최후의 선심이라는 듯 소케트는 “마지막으로 가족이 보고 싶으신 분은 여러분의 장례식장에 잠깐씩 다녀오셔도 좋습니다. 가끔 복귀에 늦으시는 분이 있는데 그러면 저도 귀찮아지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환생하는데 불이익이 많으므로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장례식장의 위치는 여러분의 몸이 아직 그곳에 있기에 찾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그냥 쉬실 분은 쉬시고 다녀들 오십시오. 아직 갈 길이 먼 관계로 자- 행동을 빨리빨리-”
라고 당부했다. 가보고 싶어졌다. 휙-
보훈병원 장례식장 703호. 문상객이 떠난 그곳은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이틀간의 상주 노릇에 지쳤는지 토토 씨의 아들 형제는 눈꺼풀을 껌벅이며 유품처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향불만이 어서 오시유하며 몸을 꺾었다. 다행이라면 유품에 대해서는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 형제를 불러서 맑은 정신에서 미주알고주알 무람없이 했다. 다른 망자들은 어찌하고 있나 하고 다른 식장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토토 씨는 늦지 말라는 소케트의 당부가 생각나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고는 영정 사진에도 일별했다. 앗! 액자 속의 인물이 바뀌어 있었다.
껄껄하며 웃는 아버지! 아버지의 웃음과 눈빛이 낯익었다. 언제던가 그 웃음과 눈빛은. 몇 년 전, 큰아들에게 이끌려 요양원으로 들어갈 시점이었다. 입구에 있던 정원석이 토토 씨의 발걸음에 맞춰 뒤로 물러나면서 아버지의 얼굴로 변해 갔다. 그리곤 한바탕 웃었다. “껄껄 너도 어디 한번 당해 보아라. 껄껄” 액자 속의 얼굴이었다.
돌아오니 소케트는 무언가 설명 중이었는데 외출을 안 한 망자들은 그새 얼굴을 익혔는지 두런두런 거렸다. ‘기차타고 가나벼.’ ‘허 세상 좋아졌네. 옛날에는 무슨 강인지 바다인지 배 없으면 헤엄쳐서 건너간다 했는디.’ ‘강바닥에 철길이 있는 것 아까 봤어?’ ‘그러게 수심이 깊지 않은지 철길이 깔려 있더구먼.’ ‘암튼 오래 살고 볼일이여 암 먼.’
돌아온 토토 씨가 자리를 하자 소케트는
“자아- 이제부터 여러분은 본격적으로 저승에 가시게 되는데요. 우선 기차로 환승역이라는 곳까지 가십니다. 여러분의 승차가 끝나면 여기서 제 임무는 끝입니다.”
이때였다. 누가 나서서
“에이 안내해 주는 김에 환승역까지 함께 가주시지.”하자 소케트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기차는 무인 운행되므로 자동으로 역에 도착, 안내도 자동으로 진행되니까요. 그곳에는 건물도 역사 하나뿐이니 그리로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참! 역사의 업무는 뭐랄까 은행과 비슷한데 가보시면 압니다. 아! 기차가 오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
하며 손을 들었다. 누가 또 나서며 재차 동행을 간청하니
“저는 이제부터 오지 않는 망자들을 찾으러 가야 합니다.”
하였다.
“그리 점잖고 깍듯해서 어디 탈영병들이 따라나서겠수?”
누가 배틀하게 말을 받자
“그리 말씀하신다면-”
하며 중국의 변장술처럼 얼굴을 옆으로 했다 바로 하니 악! 진초록 물감 섞인 시퍼렇고 벌건 눈동자의 저승사자로 변했다가 소케트로 돌아왔다.
망자들은 일시에 늑대 앞의 토끼가 되어 기차가 서자 조신조신 승차했다. 기차는 철갑선인 양 서슴없이 강으로 돌진했다. 물결이 창문까지 튀어 오르지 않는 거로 보아 정말 바닥은 얕은 모양이었다. 완행열차처럼 속도는 느렸지만 ‘뽀-옥-!’ 기적까지 울리며 달려갔다. 기적소리는 강물에 젖은 은물결위로 퍼지면서 토토 씨 아버지의 껄껄 웃음소리로 마무리하며 사라져 갔다.
기차는 새벽녘 윤슬이 반짝거릴 때까지 달렸다. 이대로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은 아닐까 토토 씨는 생각했다. 환승역에 도착할 즈음은 다시 저녁이었다. 아직도 소케트 눈동자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대추나무에 그네라도 타겠다는 심정으로 누구 하나 떠드는 법 없이 망자들답게 하차했다.
환승역. 희미한 불빛 간판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칠흑 속에 묻혀 건물이 있음을 안 것은 얼마 후였다. 앞선 자들이 문을 찾아 들어가는 모양인지 행렬은 줄어들고 있었다. 한 명이 들어가면 바람이 한소끔 불어왔다. 들어가면 불어오고 들어가면 불어오고. 이윽고 토토 씨의 차례가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마치 검고 두터운 커튼 뒤에 숨어 있었던 양 역사 안은 단숨에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낸 것처럼 대낮처럼 밝았다. 그리고 소케트과 같은 복장을 한 직원들과 망자들이 창구를 사이에 두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 번호표 뽑는 기기 옆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1. 담당 직원에게 전생에 사용했던 본인 주민등록번호 혹은 휴대폰 번호를 알린다. 2. 담당 직원은 손님의 정보로 전생의 선악 행위를 체크, 점수로 환산한다. 3. 환산된 점수에 의해 직원은 손님 의견을 참작하여 환생하는 생물의 정체를 결정 하고 역장은 집행한다. 4. 환생 불가 경우: 전생의 본인 및 무기물체 5. 생물로의 환생 점수 예시 (만점: 3500점 기준) 1500점 미만 (하등 동식물), 2500점 미만(중등 동식물), 3000점 미만(고급 동식물) 만점 이상(로열스타 프리미엄)
번호표는 219번이었다.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토토 씨의 귀는 토끼가 되었다. ( 평소 생각해 놓으신 게 있으세요? ) 직원이 묻는다.
“죽기 바뻤는데 생각은 무슨......그냥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담 생 흥하게나 해 주시오.”
바쁘다는 듯 가슴이 뻥 뚫린 214번은 직원에게 정해 달라고 한다. ( 215번 손님의 최종 점수는 2610점입니다. )
“판다 곰 팔자가 좋다던데 혹시 제 점수로 가능할까요?"
판다 곰이 끝나면 번호판에는 216번이 나타날 것이다. 이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알려 드립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으니 대기 중인 분들은 안내판을 보시고 예상할 수 있는 환생물을 미리미리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판다 곰이 끝나고 나갔다.
217번이 채비를 하고 있다.
쉽게 결정을 못 한 토토 씨는 망자인데도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는데 213번 은발의 신사는 아직도 옆 창구의 직원과 상담 중이었다.
“아! 내 점수는 3200이라며! 그럼 내 맘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냐구. 뭐? 금수저 물고 태어 날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구? 싫어. 정신 사나워. 그냥 신청서대로 거북이로 환생하게 해 줘. 한 오백 년 사는 걸루.” ■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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