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길 역사소설 옥전여왕(玉田女王)] 남제의 특사 13회
다라가야가 여왕의 등극으로 새 역사의 국면을 맞고 있는 때에 중국에서도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였다. 중국 전역을 장악하던 송나라가 쇠퇴를 거듭하더니 그동안 실권을 잡고 있던 명군장군 소도성에게 사직을 넘긴 것이다.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일개 보잘 것 없던 장군 소도성이 왕권을 손에 쥐고 중국 남부를 호령하는 남제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제 정세가 하루 사이에 바뀌자 이에 발맞춰 주변국의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분쟁에 시달리고 있는 소국들은 위태로움에 처할 때 늘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해 왔으므로 자신들 나라의 존재를 새로 태어난 황제에게 한시 바삐 알려야했다. 그것은 백제나 신라,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대가야의 가실왕은 또다시 가야연합회의를 열기 위해 각 나라의 왕들을 상가라도로 불러들였다.
“이미 알고 계실 줄 알고 있습니다만 대국에 정변이 있어 송나라가 멸하고, 남제국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동안 송나라와 돈독했던 우리로서는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생이 그러하듯이 국제정세는 늘 소용들이 치듯 변하고, 바뀌는 것입니다, 의논함이 아니라 우리도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게 발 빠르게 축하 사신을 파견하여 대국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것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백제는 이미 축하 선물을 마련하여 사신을 선정해 떠나보냈고, 신라에서도 풍족히 보물을 마련하여 특사와 함께 축하의 친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 가야에서도 더 지체함이 없이 특사를 파견하여 여러 나라와의 평형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황제의 즉위식이 보름 넘어 남았다 하니 서두르면 늦지 않게 남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먼 길에 막중한 임무를 띠고 다녀올 분이 누구일는지 그것이 고민스럽습니다.“
가실왕은 가야국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발 맞춰 나가야할 것임을 강조하고, 누구를 특사로 지정하여 남제의 수도 남경을 다녀오게 할 것인가에 대해 왕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험한 뱃길과 한 번도 낮선 땅을 밟아보지 못한 왕들로서는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회의장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제가 여인의 몸이긴 하오나 여기 모이신 왕들 중에 나이가 제일 어리고 혈기왕성하여 웬만한 일은 감당할만 하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 몸이 다녀오도록 하겠나이다.”
좌중에서 당당히 특사로 가겠노라고 나선 왕이 있었다. 일어선 사람은 다라국의 옥전여왕이었다.
“옥전여왕이?”
여러 왕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왕에게 쏠렸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스승을 찾아 주변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학문을 익혔습니다. 다만 그 학문들이 사서나 삼경 같은 중국의 것이었으므로 학문뿐 아니라 그 나라의 정서까지 몸에 배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꼭 한 번은 공 맹자님의 나라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중국어 익히기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번 일은 학문과는 무관하지만 중국이란 나라의 문화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또한 여러 국가의 특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저로서는 이번 특사의 임무를 맡게 된다면 매우 뜻 깊은 인생의 경험과 공부가 되리라 믿습니다.”
옥전 여왕은 이번 기회에 특사로 채택 되어 남제에 꼭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였다.
“여왕이 그러시다면 이번에 경축 사절을 이끌고 남경에 다녀오시구려, 중국말도 익히셨다니 얼마간 소통도 될 것이고, 견문을 넓히고 오면 정사함에서도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또 여왕이 몸소 먼 길을 찾아왔다면 고황제께서도 각별히 환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실왕은 옥전여왕에게 경축특사를 맡기고, 황제의 격에 맞는 선물을 마련할 것을 여러 왕들에게 권하였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으니 이번 특사 파견에 적극 동참하여 일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즉위식이 사월 갑오일이라 하니 중순쯤에는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고차국 항구에서 출발하고자하니 고성왕께서 튼튼하고 빠른 배를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실왕은 가야연합의 각국 왕들에게 차분차분 이번 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가야국 대표특사로 뽑힌 옥전 여왕은 남제에 가서 황제를 대할 갖추어야할 예의범절과 위엄, 태도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궁구해 보았다.
가야국에서 남제의 황제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기를 결정한 후 여러 날이 흘렀다. 그동안 각국의 도움으로 준비가 착착 진행 되었는데 참가 인원은 특사수석대표 옥전여왕 그리고 각 가야 열두 국의 대표로 대신 하나씩 열 두 명, 호위무사 대가야 연수장군을 비롯하여 궁사, 검사, 기병 각 열 명씩 서른 한 명, 서사, 필사, 책사, 학사, 역관 등 다섯 명 그리고 혹시 모를 축하 공연을 위해 악공과 무희 서너 명, 놀이패 한 무리 여왕을 보필할 시녀 두 명, 짐꾼과 노꾼, 뱃사람 등 백 여 명이었다.
축하 선물로는 무쇠 갑옷 백 벌, 부의 상징인 쇠도끼 오 십 자루, 정교하게 용과 봉황을 자루에 조각한 가야국 상징인 황금환두대도 세 자루, 소새 마을에서 기른 힘센 청총마 열 두필, 황금 줄로 이어진 가야금, 그리고 옥전에서 나는 참옥으로 만든 옥장신구 한 상자를 마련하였다.
“여러 나라에서 특사를 파견 하였을 텐데 그들보다 규모나 행색이 초라해 보이면 안 되겠지요. 궁으로 들어갈 때 여왕께서는 백마에 황금갑옷을 입히고, 말 머리개를 씌우고, 말치장을 하고, 여왕도 황금투구 쓰고 황금 갑옷을 입으십시오. 옆의 호위대장도 허리에 환두대도를 차고 위풍 당당히 군사들과 함께 여왕을 모시고 행진해 들어가십시오. 여기 가야연합을 대신하는 왕명 하지의 이름으로 친서를 보내니 여왕께서 친히 황제께 바치시기 바랍니다. 막중한 나라의 중책을 가지고 떠나는 만큼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뱃길이 험할지 모르니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남경을 향해 떠나기 앞서 가실왕은 사절단을 모아 놓고 건강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격려하였다.
“달이 앞 바다를 지나 곧장 서쪽 바다로 향하시오. 혹 탐라 해협에서 신라 수군이 방해 할는지 모르니 해안을 끼고 항해 하세요. 뱃길을 벋어나면 황해로 오르거나 남해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왜구들이 준동한다고는 하나 우리의 선단 규모라면 얼씬거리지 못할 것입니다. 풍랑이 심하지 않으면 열댓 날이면 상해에 닿을 것이며 그 후 육로로 가게 되겠는데 별 방해가 없으면 삼일 안에 남경에 도착할 것입니다.”
남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바 있는 허련국사가 뱃길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뱃길을 오고 갈 때 심한 풍파가 앞을 가로 막을는지 모릅니다. 또한 험한 산악이나 사막을 지날 때 수많은 악귀들이 가는 길을 방해 할 것입니다. 이번에 가실왕께서 우리 가야국의 음률에 맞는 가야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로운 악기 가야금을 만드라 명하셨습니다. 그 중 이 묘경천금은 봉황이 놀던 천년 묶은 오동나무로 만든 것이온데 소리통 안에 법화삼부경 여섯 자를 새기고 허련국사께서 법공양 삼만을 외어 넣으신 법력이 뛰어난 악기이옵니다. 굴고, 가는 색색의 열두 줄이 각기 나름의 법력을 나타내오니 혹 가시는 길에 큰 풍랑을 만나거나 요괴가 앞길을 막으면 이 묘경천금을 뜯으십시오. 혹시 고향 생각으로 외로움을 느끼시거나 뜻하지 않은 일로 마음이 괴로울 때 타시면 부처의 자비로움이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옵니다. 항상 곁에 두고 계시기 바랍니다.”
악사 우륵이 옥전 여왕에게 황금빛 바탕에 옥을 입힌 신비의 가야금 묘경천금을 전해 주며 간단하나마 연주법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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