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길 역사소설 옥전여왕(玉田女王)] 다라국 문룡왕자의 전사 9회
한 방울의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스며 풀의 먹이가 되거나 냇가로 흘러 강이 되거나 바다에 이르러 대해를 이루거나 증발하여 구름으로 떠돌다 다시 빗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거나 윤회를 거듭하는 세상에 실체라는 것은 없는 것인가?
인간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며 만들어 나가려 노력한 역사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지?
김무력 장군은 성왕을 비롯한 백제 수뇌부들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신라군에게는 사기 북돋고, 백제군에게는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술을 써나가기로 하였다. 성왕의 죽음을 늦게야 전해들은 백제 진영은 아연실색,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전군을 총동원하라.”
병석에서 부왕의 죽음을 접한 여창은 울분에 온 몸의 피가 끓었다. 백제군은 곧 전열을 정비하고 신라토벌에 나섰다. 우선 신라군의 보루인 삼년삼성을 깨뜨릴 계획이었다.
“전군 앞으로!”
왕자 여창은 휘하의 모든 군을 집결하여 삼년삼성으로 쳐들어갔다. 삼년산성에서는 신라군들이 성왕을 비롯해 참수한 백제 수뇌부들의 목을 창에 꿰어 높이 쳐들고 쳐들어오는 백제군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희롱하고 있었다. 백제군은 온갖 무기를 동원하여 성문을 부수고 쳐 들어가 삼년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삼년산성을 사수하며 백제군과 일전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던 신라군은 거기에 없었다. 성안은 텅 비어 있었고, 조금 전까지 백제군을 희롱하던 신라군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겁먹은 신라군들이 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모두 도망친 모양입니다.”
왕자 여창의 옆을 따르던 부장이 비어 있는 성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비겁한 놈들 내일 날이 밝거든 놈들을 추격하여 씨를 말리겠다.”
여창은 분에 못 이겨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이는 백제 진영의 크나큰 착오였다. 김무력장군은 성난 백제군이 삼년산성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진군하여 비어 있는 백제의 요새인 환산성으로 자신의 군사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빼돌렸던 것이다. 그리고 백제군이 돌아올 길목에 군사를 배치하여 일격에 백제군을 괴멸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눈치 채지 못한 왕자 여창은 군사를 거두어 다시 환산성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 가고 비까지 질척거려 행군에 어려움이 있었다.
대장군 여창이 구천에 이르렀을 때였다. 하늘에서 효시가 울렸다. 새 울음 소리려니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수 만 개의 화살이 백제군을 향해 날아왔다. 미처 방패를 준비하지 못한 백제군은 그대로 화살에 맞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백제군이 강 한 가운데서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사이 숲과 계곡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신라 기병이 달려 나와 백제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백제군은 고스란히 신라군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은 차제에 왕자 여창까지 제거해 백제의 기를 완전히 꺾으려 하였다.
“여창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특진은 물론이려니와 평생 먹고도 남을 곡식을 상으로 내리겠다.”
김무력 장군은 정예기병들에게 왕자 여창의 목을 따오라고 명령하였다. 김무력장군의 명을 들은 기병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가 여창의 목을 베려 창칼을 휘둘렀다.
“왕자님을 보호하라!”
백제 군사들이 왕자를 에워싸고, 사력을 다해 신라기병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강하게 몰아붙이는 신라기병의 공격을 막기에는 힘이 부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제군의 방어벽이 허물어져 나갔다. 사졸들도 신라군의 맹공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 긍긍하였다. 왕자 여창의 운명도 이제 경각에 달려 있을 만큼 위태로웠다. 이때 활을 든 한 궁수가 나서더니 신라기병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갑옷을 뚫고 들어가 달려오는 기병을 쓰러뜨렸다. 궁수는 가장 용감히 창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자를 헤아려 활을 소아 쓰러뜨렸는데 그 힘이 막강하고, 매우 빨랐으므로 달려들던 신라 기병들은 속수무책 화살에 맞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틈을 이용하여 왕자 여창은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대단한 궁수로다. 어디 소속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왕자 여창이 옆의 부관에게 물었다.
“왜의 장수 축자국조라 하옵니다. 왜국에서도 이름난 명궁이지요.”
그러나 신라군은 삼겹 사겹으로 왕자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환산성은 이미 적의 손에 넘어 갔으니 사비성으로 피하도록 하라.”
왕자 여창은 요새를 포기하고 수도인 사비성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 백제군은 신라군을 피해 샛길을 이용하여 사지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하지만 샛길에도 신라병들이 막고 있었다. 사면팔방으로 에워싼 신라군은 왕자 여창을 발견하고 맹공을 가하며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왕자 여창은 또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제가 막겠습니다.”
뒤쪽에서 말 탄 장수가 창을 빗겨들고 달려왔다. 다라국 왕자 문룡이었다.
가야군을 이끌고 있던 대장군 문룡은 백제군 대열을 뒤따라오다가 신라군의 공격을 받았다. 가야군들도 신라군들이 요소요소에 잠복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신라군의 급습을 받았기 때문에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가야군은 대열을 정비하고 신라군과 맞서려하였다. 그러나 구천 강가에 노출된 가야군은 어디 몸을 숨길 곳도 없이 숲과 계곡에 숨어서 쏘아대는 신라 궁수들의 화살에 막무가내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군 문룡은 군사들을 언덕으로 올리고 사태를 주시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야 저편에서 여창 왕자가 신라군에 에워싸여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 피해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왕자를 구해야한다.”
대장군 문룡은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장수 몇 명을 뽑아 여창왕자가 포위되어 있는 신라군을 향해 말고삐를 채었다.
“신라군은 길을 비켜라!”
가야 십이국의 제일 검사 문룡의 쇠투겁창이 바람개비 돌 듯 여창 왕자를 에워싸고 있는 신라군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문룡 왕자와 가야 장수의 강력한 공격에 신라군들의 대열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창 왕자는 그 틈을 비집고, 사지를 벋어나 사비성으로 가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백제 왕자 여창은 부왕을 잃고, 많은 군사를 잃었지만 더 이상의 전투력을 상실해 사비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고 숨을 수밖에 없었다. 가야 대장군 문룡은 여창 왕자가 안전한 곳까지 피할 수 있도록 계속 몰려오는 신라기병을 몰아 붙였다. 그러나 이미 연합군을 제압했다고 생각한 신라 진영에서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군사들을 격려하며 가야 군을 공격하였다.
“여창이 사지를 벗어났다면 다라국의 왕자 문룡의 목을 베어오라!”
유신아, 너도 이 전투에 참여하여 전쟁이 어떤 것인가 몸소 체험하여라.”
김무력 장군은 여창 왕자의 목 대신 가야의 대장군 문룡의 목을 노리고 맹장들을 풀어 문룡을 치게 하는 한편 아직 나이가 어린 손자 김유신에게도 전쟁의 실상을 체득할 수 있도록 장수들과 함께 싸움터로 보냈다. 이제는 문룡 왕자와 가야 장수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신라군을 맞아 생사를 건 일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왕자를 구하고 가야군의 용맹을 보여주어라.”
삼년산성 언덕 위에서 문룡 왕자의 투혼을 바라보고 있던 좌장 신렬이 가야 전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진격하라.”
가야군은 장군의 명령에 따라 언덕을 뛰어내려 신라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환산성과 말동산을 둘러싸고 신라군과 가야, 백제, 왜의 연합군은 역사의 획을 긋는 대 전투에 돌입하였다. 전투는 사흘 낮밤을 가리지 않고 전개되었다. 연합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결과는 유리한 지형을 점하고 전투에 임한 신라군의 승리였다.
이 전투로 연합군 이만 구천 여명과 신라군 이 만 오천 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신라군의 승리로 신라는 빼앗겼던 진성과 관산성을 되찾고 백제의 요새인 여러 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손실만큼 신라군의 손실도 컸으므로 더 이상 전투를 확대시키지 못하고 전쟁의 후유증을 수습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건곤일척의 이 전투에서 가장 아까운 것은 다라국 왕자 문룡의 죽음이었다. 백제 왕자 여창을 사지에서 구해 탈출 시키고 뒷일을 감당하며 신라군을 막아내던 대장군 문룡은 김무력 장군의 명령으로 몰려든 신라군의 맹장들과 사력을 다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낙동강 물줄기가 역으로 흘러들었다. 역류에 놀란 물고기들이 강 언덕으로 튀어 올라 풀숲에 떨어졌다. 다라국 사람들은 튀어 오른 물고기를 광주리에 주워 담으며 이는 하늘이 내린 복이라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다라국 사람들의 기쁨은 잠시 들려오는 비보에 눈물을 흘려야했다.
가야군이 신라군에 패하여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으며 백성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문룡 왕자가 전사했다는 소식에 접한 다라국은 절망과 탄식에 휩싸였다. 그러지 않아도 선왕의 붕어로 가슴 아파하던 다라국 사람들은 왕자의 전사 소식에 마음 둘 곳을 몰라 전전긍긍하며 눈물을 흘렀다. “다라국 백성들은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고통이니 슬프더라도 이겨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섭정을 맡은 병천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섰다. 병천왕은 곧 상신과 질지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하고, 왕자의 장례를 하루 빨리 치루고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기위해 노력할 것을 의논하였다.
왕자의 능은 옥전 언덕 부왕이 잠든 바로 옆으로 정하였다. 비록 임금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이제까지의 위상과 연합군의 대장군으로서 전쟁에 나가 몸 받쳐 싸운 공을 감안하여 부왕의 능보다 더 큰 규모의 능을 축조하였다. 능의 바닥에는 부의 상징인 쇠도끼 백여 개를 깔고, 장군의 상징으로 평소 아끼던 용봉조각을 한 환두대도 세 자루를 곁에 두었다. 금본존상과 청동관음보살상, 군마상, 정교한 자기와 금은구슬 옥구슬도 같이 넣었으며 극락여행을 위한 노자 돈도 듬뿍 관에 넣었다.
다만 그 동안 가야의 관습으로 되어 있는 순장은 살아있는 사람 대신 왕자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장군 셋을 옆에 뉘여 극락 여행에 동행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다라가야대장군문룡왕>으로 추서하고 그의 뜻을 기리기로 하였다.
가야 연합의 국왕들과 질지들, 장군들이 문룡왕자의 능에 찾아와 애도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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