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안중근"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에 묻어 다오",김대중"행동하는 양심"

리복재 발행인 | 기사입력 2009/08/21 [10:18]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안중근"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에 묻어 다오",김대중"행동하는 양심"

리복재 발행인 | 입력 : 2009/08/21 [10:18]
▲ 중국 하얼빈에 장군의 동상을 세운지 11일만에 철거 당해 3년 간 보괸돼온 안중근 장군의 동상이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광복절인 15일 0시를 기해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리복재

[민족/통일/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리복재] 안중근 장군을 우리는 지금껏 '의사'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보면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언제까지 '장군'이라 부르지 않고 '의사'로 불러야 하는 것인지요?
 
침략 적괴수 이등박문을 척살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시며,
전쟁수행중 적장을 사살했기에 포로로써 대우해 달라시며,
대한의군참모중장(2성 장군), 대한독립특파대장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장군으로 예우해 달라고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나라에서 임명하지 않았는데, 무슨 장군이냐고 변명할 줄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외국 사례를 열거하지 않아도, 구한말 정부관료들의 민생착취에 항거하고
일제침략에 맞서 싸웠던 동학혁명에서의 전봉준 장군...
우리는 녹두장군 전봉준, 전봉준 장군으로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에 묻어 다오..."
안중근은 '의사'가 아닌 2성 '장군'이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해외에서 접하고 이 기사를 쓰고나서
서러움에 독한 술과 백두산 인삼  술을 연거푸 들이켰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님 이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셨을때 '내 몸의 반쪽을 잃었다'라는 말씀이
현실로 다가오니 더욱 아타깝고 애처롭기만 합니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영구 집권을 막지 못한 죄?로 늘 '빨갱이'란 꼬리표를 달고
이념적 상징과 분단의 서러움을 한몸에 지녀야 했습니다.
그런 '빨갱이'란 이니셜에 맞지 않게 1997년 12월 마침내 수평적 정권 교체인
한국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대 위기상황인 경제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과 세계에 호소하며,
손수 경제와 국민 그리고 기업을 챙기며 최단시일내에 IMF를 극복해 내셨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테러와 죽음의 위기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민주화를 일구어 냈던 김대중.

자신을 죽이려 했던 당사자들을 용서와 화합으로,
또 조국과 국민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 준 故 김대중 대통령님.
더이상 고인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대통령님 영결식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는 김대중 대통령님 - © 故 노무현 대통령  장례위원회 제공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한겨울에 베옷을 입고 바위구멍에서 살며 눈비 맞아도) /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을 쬔 적 없건마는 - 임금님의 성은은 입은 바가 없건마는 ) /
서산에 해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서산에 해가 진다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난다) /

 
 [조선시대 조식 지음]
  



자료 09/08/21 [13:05] 수정 삭제  
 

김대중전대통령 자필일기 전문



2009년 1월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이다.

2009년 3월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 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 "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 의원 시켜서 `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 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애국 09/08/21 [17:41] 수정 삭제  
  통탄할 일이다
가슴한켠에 남아있는 슬픔이 밀려온다
돌아보면 모두가 민족적 비극이 아닌가하네...
안중근 김대중 조식의 시---잘 보고가요
박상진기자 09/08/23 [01:37] 수정 삭제  
  저 또한 같은 마음입니다.
리대표님 인터넷협회장이 되셔서 바쁘시겠지만
자주 글 올려주세요.
감동의 글 감사드립니다.
주권국이되자 09/08/23 [10:57] 수정 삭제  
  안중근 장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제껏 의사로 배워왔고 불렸습니다.
일제에 의한것은................

안중근숭모회 이사장이라고 하는 자들 면면히 인터넷상에 떠올랐더군요.

안중근숭모회의 중심세력들은 과거 친일전력과 독재-반민주 전력들이 있던 사람들로서
기본적인 역사의식과 도덕성 및 양심등 이 일반국민들에게 조차 신뢰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래는 숭모회의 역대 이사장들입니다.
△윤치영: 임전대책협의회 회원(41), 이승만 비서실장(45~48), 내무부장관(48), 서울시장(63),
자유당ㆍ공화당 국회의원(48~71), 5공 국정자문위원(81).
△이은상: 이화여전 교수(31), 친일잡지 주간(43), 시조작가협회장(66), 5공 국정자문위원(81).
△백두진: 조선은행 근무(34~45), 족청 재정담당 이사(46), 재무부장관(52), 국무총리(70),
유신정우회 의장(73), 국회의장(79).
△최태섭: 한국유리 회장(57), 크리스천아카데미 이사장(68), YMCA 재정위원장(68).
△정원식: 문교부장관(88~90), 국무총리(91~92).
△노신영: 외무부장관(80~82), 안기부장(82~85), 국무총리(85~87), 민정당 고문(87).
△황인성: 국방부 재정국장(63~68), 민정당 국회의원(81~88), 국무총리(93).
△안응모: 치안본부장(82~83), 안기부 1ㆍ2차장(88~90), 내무부장관(90~91), 자유총연맹 총재(96~98).
위의 인물들을 보면 어떤인물들인지 알겠죠.
바로 일제시대때는 일제에 협력하고,
광북이후 죽 친일과 그들 정권의 통치수단으로 "안중근장군의 정신"을 훼손하며 이용하고 있는자들입니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미식 여행지 고흥, ‘녹동항 포차’에서 추억을 쌓아요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