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길 역사소설 옥전여왕(玉田女王)] 관산성 전투
[플러스코리아타임즈=안문길] 관산성은 신라가 새로 점령한 한강 하류를 본국과 연결시켜 주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백제로서도 빼앗긴 신주를 재탈환 하거나 한강 이북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길목이므로 이곳을 점령하지 않고는 전쟁의 의미도 사라질 정도의 막중한 지역이었다.
연합군은 구타모라 요새를 관산성이 보이는 앞쪽으로 당기고, 전투대행으로 진을 짜 나갔다. 이번에는 가야 철기군이 선봉에 서기로 하고, 중군에 왜군, 백제군이 뒤를 받치기로 하였다.
가야의 기병 칠천은 무쇠투구에 비늘갑옷과 쇠투겁창, 부월수, 대검 등으로 무장하고 말에는 판갑옷을 씌워 적의 화살이나 창칼이 몸을 뚫지 못하게 하였다. 기병과 함께 탈마군이 뒤따랐는데. 탈마군은 가야 특유의 무기인 유자무기로 말에 탄 적병을 말에서 끌어내리는 역할을 맡은 군대였다.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신라에게 당한 한을 풀 때이다. 가야 기병의 용맹이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라.”
선봉대장 다라가야 왕자 문룡은 황금색 투구에 황금 판갑옷을 입고, 용과 봉황으로 장식한 환두대도를 허리에 차고, 말머리가리개에 판갑옷 그리고 말꾸미개로 장식한 검은 말에 올라 관산성을 향해 진격하였다.
백제, 가야, 왜의 연합군이 관산성을 공격하러온다는 소식을 들은 신라 조정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산성이 함락되면 한강으로의 진출이 어려울뿐더러 바로 코앞에 수도인 금성이 있어 나라의 사직을 보전키 어려운 때문이었다.
이미 진성에서의 패배를 맛본 신라는 관산성 사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국에 걸쳐 병력을 징발하고, 신주를 지키고 있는 김무력의 정예부대를 관산성 전투에 투입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 대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촉박하여 준비가 미쳐 마련되기도 전에 연합군은 관산성 밑까지 진격해 와 있었다. 신라는 이미 진성 전투에서 패한 각각 우덕과 이찬 탐지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연합군과 다시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관산성 아래 옥천분지에 연합군과 신라군 기병 오천이 대치하였다.
“우덕과 탐지는 들으라. 너희는 이미 진성에서 패하여 이곳으로 도망쳐 왔거늘 무슨 낯으로 졸개들을 다시 끌고 왔느냐?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하여라!”
선봉장 문룡이 우렁찬 소리로 신라군을 꾸짖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이다. 지난번에는 화공으로 패했지만 벌판싸움에는 우리가 훨씬 유리할 테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신라군도 지지 않고 강력히 맞서 나왔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들이로군.”
“공격하라!”
선봉장 문룡의 공격명령과 함께 진군을 북돋는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선봉에 선 가야군들은 말고삐를 채어 일제히 신라군을 향해 돌진하였다.
천만년 고요를 간직한 산골짜기에는 두 나라의 운명을 건 대회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든 두 나라 기병이 부딪치는 창검소리로 산이 무너지고, 불꽃 튀는 사나이들의 열기에 강물이 끓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가야군의 공격과 관산성 사수의 사명에 목숨을 건 신라군의 방어는 깨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수적으로 열세인 신라군이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가야군 기병의 무기나 갑주가 쇠로 무장되어 있었으므로 신라군의 무기로 대적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신라군의 반격에 틈을 보이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마군들이 유자무기를 휘둘러 신라기병을 말에서 끌어 내렸다.
말에서 떨어진 신라병들은 가야기병의 말발굽에 짓밟혀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싸움은 삽시간에 신라군의 열세로 기울여 졌다. 선봉장 문룡은 다라국 철기병을 앞세워 신라군을 몰아 붙였다. 최후까지 연합군과 일전을 불사했던 신라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관산성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성으로 들어간 신라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다시 방어의 태세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성 탈환 계획을 마치고 전투에 임한 연합군은 투석기와 쇠뇌를 앞세워 성안으로 공격을 퍼 부었다. 그리고 공성망치로 성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진격하였다. 이번에도 왜군의 불공격이 위력을 발휘하였는데 진성전투에서와 마찬가지로 왜군들이 쏘아대는 불화살로 관산성도 불바다의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관산성이 잿더미가 되어버리자 신라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관산성을 버리고 그들의 마지막 보류인 삼년산성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두 번의 전투에서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성왕은 승전의 기회를 이용해 북으로 치고 들어가 신라가 빼앗은 신주를 탈환하고 아예 고구려의 멸망까지를 머리에 담고 있었다. 오 월에 시작한 전투는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 연합군과 신라의 육만의 군대가 생사를 걸고 부딪쳤던 전쟁터는 언제 그랬었던가싶게 평화롭고 고요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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