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전여왕(玉田女王)] 다라국 왕자 문룡 5회
눈 덮인 들판에 까마귀 떼가 날아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요.”
좌장 신렬이 다라국 왕자 문룡을 바라보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라군이 두 번의 전투에 패했으니 곧 결판이 나겠지. 어떻든 신라를 완전히 굴복 시킬 때까지는 여기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왕자 문룡은 금관가야를 멸망시키고, 지금도 가야제국을 넘보고 있는 신라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신라와의 전쟁도 그러하지만 나라 안 백성들이 근심 없이 편안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국상을 당하여 나라 안이 텅 비어 있는데 왕자님까지 전장에 나와 있으시니 백성들 마음이야 오죽 허전 하겠습니까. 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 나라님으로 등극하셔야지요. 그리고 그동안 미루었던 탁순국 서정공주님과 혼사도 이루셔야지요.”
좌장 신렬은 전쟁도 전쟁이려니와 왕자가 본국으로 돌아가 임금이 되어 백성들을 평안히 살도록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원하고 있었다.
다라국은 대가야를 접경으로 하고, 가야산을 끼고 도는 황강으로 감싸인 크지는 않지만 풍광이 아름답고, 아늑한 나라였다.
야로현에는 풍부히 철이 묻혀 있어 다라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철무기와 철공예를 만들어 주변국에 수출하며 제철기술을 뽐내었다. 그리고 옥전의 들에서는 질 좋은 옥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굴러 다녔는데 손재주가 뛰어난 다라국 사람들은 옥구슬, 옥목거리, 옥귀고리 등 빼어난 옥공예물을 만들어 이웃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황강을 따라 이어진 강둑은 고운 찰흙으로 덮여있어 흙을 파 질그릇을 만들어 왜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논밭이 기름져 한 톨의 낱알을 심으면 스무 알의 소출이 나왔다.
모든 것이 풍족한 다라국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하나 되어 이미 전기 가야에서 물려받은 선진 문화를 꽃피우며 태평성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건강하던 한지 임금이 몹쓸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동안 믿고 따르던 임금이 승하하자 다라국 백성들의 슬픔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나라에서는 옥전 따뜻한 언덕에 능을 만들어 임금을 안장하고 왕생극락을 빌었다. 임금의 붕어로 다라국은 주인 없는 나라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곧 한지왕의 외아들인 문룡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고 즉위식을 거행하기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러한 와중에 백제이서 신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가야국에 원병을 청해왔던 것이다.
문룡 왕자와 백제 왕자 여창은 아주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 문룡 왕자는 어린 시절 백제의 수도 웅진에 가서 왕인박사에게 천자문과 논어 등 학문과 백제의 선진문물에 대해 배웠고, 무술을 습득하고, 병법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공부한 바 있었다. 그 때 같은 또래의 여창과도 자주 어울렸으므로 가까운 친구나 동문배나 다름없이 친하게 지내왔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장차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면 어떻게 백성들을 이끌어 나갈 것인 가에 대해서 의논하기도 하였다. 이번 가야군의 대장군을 자청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여창왕자와의 인연에서였다.
“급할 것 없네. 지금은 삼촌 병천 질지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고 계시니 걱정할 게 뭐가 있겠는가. 곧 사태가 진정된다면 즉시 고국에 돌아가 즉위식에 참여할 것이네.”
문룡 왕자의 마음은 여유로웠다. 다라국 백성들은 문룡 왕자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와 한지왕의 대를 이은 성군이 되어 태평한 나라를 이끌어 줄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른 겨울인데도 예년에 비해 많은 양의 눈이 펑펑 쏟아져 쌓였다. 세상은 쌓인 눈에 가려 희게만 보였다. 하지만 대지 아래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백제와 신라의 진영도 겉으로는 평안한 듯 보였지만 내면에서는 곧이어 불어 닥칠 폭풍을 막기 위한 대비책 짜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신라는 두 번씩 패한 전투를 만회하기 위해 신주의 성주 김무력 장군의 주력 부대를 삼년산성으로 끌어 내리고, 병력을 증가하여 다음 전투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연합군내에 첩자를 투입하여 적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낱낱이 파악하여 허점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백제는 승전의 여세를 몰아 신주를 탈환할 것인가? 아니면 적의 심장인 금성으로 직접 쳐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갈려 있었다. 백제는 북쪽과 남쪽 두 곳에 적을 두고 있는 셈으로 북쪽의 신주를 치러 군대를 이동시키면 남쪽의 신라군들이 뒤통수를 겨냥할 것이고, 금성으로 군대를 집결시키면 김무력 부대가 사비성으로 몰려올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극락은 다시없는 이상 세계였지만 모든 것이 늘 물 흐르듯 흘러가는 곳만은 아니었다. “동방예불지국에 전쟁이 그치지 않으니 여래님께서 왕들께 권하시여 전쟁을 그치게 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십일면관음보살이 여래를 방문하여 전쟁을 그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관심을 버리세요. 이 몸도 여러 차례 전쟁의 허망함을 알아듣도록 전하였지요. 일체가 어제 밤 꿈과 같으니 생사나 열반이 생겨나거나 멸할 것이 없으며 오거나 갈 곳이 없다. 증득된 원각도 얻거나 잃게 될 것이 없고,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다. 그대들이 원하고자 하는 취득의 결과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득도의 길로 매진함이 어떠하뇨?”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부처의 간곡한 부탁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왕지사 그들이 벌인 일이니 결과는 그들 업보에 맡기는 수밖에요.”
여래께서는 관음보살을 달래어 보내고 해인삼매에 임하셨다.
ㅡ계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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