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코리아-박준서 소설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홍일국은 낯선 남자에게 이끌려 종잡을 수 없는 이곳으로 온 시각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꽤 오래 흐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꽁초 몇 모금 빤 시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낯선 남자인 그에게 마지못해 끌려 온 것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 왔다고 해야 옳았다.
묘한 매력을 지닌 그는 검은 중절모 때문인가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못해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행동이 워낙 점잖은 태로 보아 노년의 신사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옷차림은 뭐랄까 연예인처럼 최신 패션의 양복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단순한 생활한복 같은 것을 아래위로 걸쳤는데 단추나 주머니선도 보이지 않고 마치 밤새 쌓인 겨울의 눈 내린 들판처럼 눈부신 화이트칼라 복색이었다.
흰색으로 쪽 빼입었으면서 모자는 검은 중절모라니 갱영화에 나오는 보스처럼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그의 얼굴 역시 갱 두목처럼 표정조차 알아채기 어려웠다. 화가 나 있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분 좋아 보이는 것은 더욱 아니었지만. 홍일국은 언제까지나 이런 황량한 곳에 낯선 남자와 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용기를 내었다.
“아니, 여기가 어딥니까? 댁은 뭐하는 사람인데 자는 사람을 깨워 이런 곳으로 오게 하는 겁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112라도 부르겠다는 심정으로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홍일국에게 돌아 온 것은 낯선 남자의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였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선생님은 돌아가신 겁니다. 죽었다는 말이지요.”
아니, 이게 무슨 흥부 박 타다가 하품하는 소리란 말인가?
“네? 선생님이 돌아가신 거라니? 어느 선생님이 말입니까?"
선생님이란 소리에 고등학교 때 담임이던 미술 선생을 떠올릴 정도로 착각까지 하는 홍일국은 그만큼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 불가능한 형편에서 담임을 떠올린 것도 이해가 안 되기는 했으나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방과 후 미술반 키를 가지고 있던 홍일국은 급우 두어 명과 몰래 담배를 피우다 그만 그림을, 그것도 담임의 유화 한 점을 반 가까이 태워 먹은 일이 있었다. 별명이 유비였던 선생은 자기반 애들이 저지른 일이라 벙어리 냉가슴이 되어 홍일국의 손바닥을 작대기로 내려치며 ‘이대로 액자 해서 몇 년이고 놔 둘 터이니 사회에 나가 돈 벌면 그림 값을 변상해야한다. 알겠느냐? 그 때까지 나는 안 죽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림 값 미불 상태에서 그만 돌아가셨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할 만큼 홍일국은 자신의 죽음이 낯설었다.
그 때였다.
낯선 남자는 “선생님은 한가하게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주위를 좀 돌아보십시오. 저 분들처럼 홍일국 선생님은 죽었다 즉, 돌아가셨다 뭐 이런 말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공원 잔디밭에서 맛나게 오수를 즐기는데 당신이 깨운 것 아니오? 그리고 이런 처음 보는 곳으로 데려오고 말이오. 무례하게서리!”
무례라는 단어에 힘을 넣으면서 홍일국이 주위를 돌아보니 시각은 미명인가 넓은 광장에 연막탄이 가셔가는 듯, 희뿌연 안개 사이로 사람들의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서있는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는데 땅을 보고 있는가 하면 뒤돌아보는 이도, 하늘을 쳐다보거나 자세히 보니 고개를 외로 꼬며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낯선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도 생각이 안 나신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기억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낯선 남자와의 대화가 홍일국에게만 해당되었던 것은 아니었던지 홍일국을 비롯하여 제각각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아니 소리 없이 오르르 자리를 이동했다. 옮겨가니 뜻밖에도 영화에서나 보았을까 마치 로마 의회 정치할 때나 모임직한 곳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서로 목례조차도 나눈 사이가 아니었고 낯선 남자인 그가 앉으라는 말도 안했건만 묵묵히 저마다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한 채 계단을 의자삼아 앉았다.
낯선 남자는 사람들의 앞을 지나 가운데 쯤 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는 약간의 팁을 준다는 의미처럼 살짝 미소를 보였다.
“에- 우선 여러분은 앞에 서 있는 제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보다는 삼백년 전에 먼저 죽어서 이곳에 온 여러분의 선배입니다. 이곳에서는 이름이 굳이 필요 없습니다만, 우선 여러분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넥스트라이프 코치 ‘소케트’라고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넥스트라이프 코치는 알겠는데 소케트? 별 희한한 이름도 다 있군. 그럼 이 자리가 이승을 떠나 저승을 안내하는 설명회란 모양인가? 그나저나 내가 죽다니 도무지 믿기질 않아 하며 그 와중에도 투덜거리는 홍일국이었다.
“여러분들은 아까 말씀대로 지금까지 사시던 세상에서는 수명을 다 하여 숨을 더 이상 쉴 수가 없게 된 상태가 되어 오시게 된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려 죽었기 때문에 이곳에 오신거지요. 아직 반신반의 하시는 분도 계시고 하니, 그럴 리 없다 하시는 분은 화면을 봐 주시기기 바랍니다.”
그는 마치 옛 영화 ‘이티’가 달을 향해 손가락질 할 때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 홍일국은 낯선 남자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마술사의 솜씨처럼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다. 들어설 때 간과할 수도 있었을 터였지만 사람들은 일제히 ‘오-!’하며 낮은 음성들을 냈다.
스크린에서는 바로 상영? 되기 시작했는데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홍일국의 일대기였다. 아주 젊은 여자가 애를 낳는가 싶더니 그 여자는 시시각각 나이 먹어가는 홍일국의 모친으로 변했고 따라서 홍일국도 시장통에서 우는 소년에서 미술반의 그림 태워먹는 학생으로 첫사랑에 차이는 청년, 백마마크도 선명한 군인으로, 카페와 한강이 보이는가 하면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아이들과 같이 있는 백사장도 보였다.
홍일국은 다른 사람들도 내 일대기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아예 품지도 못한 채, 넋이 나가 스크린에 눈을 박았다.
일대기는 종반으로 흘러갔다. 마지막 사랑에게 차인 주인공 뒤로 요양원이 보이는가 싶더니 차를 몰고 질주하는 장면이 나타나고는 멀어졌다. 곧이어 홍일국은 실제로 귀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붉고 푸른빛을 내는 경광등 이며 사이렌소리도 아련히 들리는 착각에 빠졌다. 갓길 저 너머에 부서진 트럭이 고철처럼 보였다.
또 그 너머 잔디밭에는 음식물 쓰레기자루가 터진 채 엎어진 것이 있었다. 무얼까? 스크린은 그것을 휙! 하고 확대했다. 가까이 보니 사람이었다. 즉사한 것 같았다. 쯧쯧 사고로구먼. 누굴까. 피범벅 얼굴이라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홍일국은 어디서 많이 본사람 같았다. 누굴까. 그것 참, 그 사람 나하고 정말 비슷하게 생겼네. 라고 생각했다. 3일 전 일이었다.
불과 엊그제 자신의 과거를 영화처럼 본 홍일국은 객사였고 그것도 교통사고사라니 참 복도 지지리 없었구먼 하며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야 홍일국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른 사람들! 아니? 이런 지질한 내 생애를 사람들이 앉아서 다 같이 보았단 말인가. 이런 망 할! 하며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살피니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거나 심지어 눈물이 그렁그렁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칭 넥스트라이프 코치라는 소케트가 어디선가에서 나타나 다시 중앙에 서더니 사람들을 한 번 둘러 본 후 이렇게 말했다.
“잘 들 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은 바로 그렇게 전생과 이별하신 망자인 것이지요.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천천히 일어들 나셔서 저 문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다시 제 지시에 따르시면 됩니다.”
홍일국을 비롯한 사람들, 아니 망자들은 소케트의 안내에 따라 야외영화관 같은 곳에서 나왔다. 밖은 아까처럼 황량한 그 곳이었는데 뜻 밖에도 그들과는 별도로 다른 망자의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 소케트의 멘트가 이어졌다.
“자- 그럼 이리들 모이셔서 한 줄로 서서 저 문으로 한 명씩 들어가시면 됩니다. 지금은 추우시겠지만 저 문을 통과하면 즉, 넥스트 라이프에서는 여러분의 선배들이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과 아늑하고 쾌적한 잠자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념하실 것은 저 문으로 일단 들어가신 분은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다시 이곳으로 나오실 수 없습니다. 아시겠지요. 자- 그럼 모두 줄을 서십시오.“
홍일국과 망자들은 아까 시청한 자신들의 과거 일대기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였기에 누구하나 이의를 달기는커녕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저승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서기 시작 하였다.
그동안 안개는 더욱 짙고 두터워져 농무로 변해 갔다. 망자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줄은 한없이 이어졌다. 모두들 이러다 오늘 내로 들어 갈 수 있으려나. 춥고 배고픈데 말이야. 한없이 이어지는 줄. 그 때였다. 정연한 질서를 깨고 맨 뒤 쪽에 줄을 서던 한 때의 망자들이 줄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가서 새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미 줄 선 사람들이 이렇게 엄연한데 빠져나와 새치기 하다니 무슨 짓이오?”
그만큼 뒤로 쳐지는 망자들과 홍일국이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높이며 항의했다.
“어허- 이 사람들이 뭘 모르는구만. 망자라고 다 같은 망자인 줄 아나?”
새치기 하는 망자들은 자못 으스대며 위세까지 당당한 것이었다.
홍일국은 새치기 당하는 다수의 망자들과 함께 ‘춥고 배고픈데 이게 뭐야. 넥스트라이프코치 어디갔어? 소케트 불러와!’ 하고 떠들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어디선가 넥스트라이프 코치가 나타나자 홍일국과 새치기 당하는 망자들은 어서 바로 잡아 달라고, 저 새치기꾼들은 도로 뒤로 가서 서도록 계도 하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소케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 네. 저것은 새치기가 아니고 이 곳 규칙에 맞는 행동입니다. 앞에 설 권리가 있다는 말이지요. 에- 그러니까 즉 망자라고 다 같은 망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자신의 일대기 말미를 보고 아셨겠지만 거의가 객사 고독사지만 저 분들은 모두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택사하셨거든요. 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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