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홍익인간 7만년 -201]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4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7 [00:55]

[홍익인간 7만년 -201]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4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7 [00:55]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2-

 

2. 분포지역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의 분포지역은 파미르고원의 동쪽 전체에 걸친다.

 

1) 황족(황이)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2) 양족(양이), 우족(우이), 방족(방이), 견족(견이)

 

황족(황이)에서 분파된 양족(양이)은 주로 개마(蓋馬) 즉 지금의 백두산 남쪽으로 한반도에 걸쳐 살았고, 우족(우이)은 개마 즉 백두산의 동쪽으로 연해주에 걸쳐 살았고, 방족(방이)은 속말(粟末) 즉 송화강의 북쪽에 살았으며, 견족(견이)는 서쪽으로 삼위산(三危山)에 걸쳐 살았다. 이들 4족을 포함하여 황족(黃族:黃夷)은 주로 황하(黃河) 이북으로 몽골, 만주, 한반도, 연해주, 동서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산 것이 된다.

 

3) 현족(현이)

 

현족(현이)은 흑수(黑水) 즉 흑룡강 유역에 걸쳐 살았는데, 황족(황이)과는 달라, 아마도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시에 흑소씨의 일파가 황궁씨를 따라 나섰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위 흑수말갈이 이 현족에 속하는 것이 될 것이다.

 

4) 백족(백이)

 

백족(백이)은 서안 서쪽으로 황하상류지역의 사막지대에 걸쳐 살았다. 아시아 백인종에 해당하는데,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시에 서방으로 간 백소씨(白巢氏)의 일파로서, 서기전8000년경에 먼저 파미르고원의 동쪽으로 나가서 황하상류, 사막지대 등에 정착한 것이 된다.

 

후대에 황족(黃族)의 일파인 웅족(熊族)과 서안(西安)이 위치한 태백산(太白山) 부근의 황하유역에서 전쟁을 한 호족(虎族)이 이 백족의 일파가 된다.

 

주나라 시대에는 주나라 서쪽의 백이(白夷)가 서이(西夷)로 불려지게 된다.

 

5) 남족(남이)

 

남족(남이)은 중국내륙의 동쪽으로 황하하류, 산동지역, 회수지역, 양자강 북쪽에 걸쳐 살았으며, 청궁씨(靑穹氏)의 후예가 된다. 남족(藍族)의 남(藍)이라는 글자가 파랑색과 보라색의 중간 색인 쪽이라고 불리는 푸른색 계통이 되는데, 소위 몽골족의 푸른반점과 무관하지 않는다고 보이는데, 황궁씨족은 푸른반점을 주로 엉덩이쪽에 가지고, 청궁씨족은 몸 전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한다.

 

6) 적족(적이)

 

적족(적이)은 남족처럼 중국내륙의 동쪽으로 분거한 청궁씨(靑穹氏(의 후예로서 주로 양자강 남쪽에 살았다. 후대에 남만(南蠻)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시대가 흐르면서 원래 남족(藍族)이었으나 사는 땅의 기후와 음식에 따라 피부색이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이 된다. 소위 아메리카 인디안은 원래는 황인종이었으나 아메리카대륙에서 살면서 피부색이 변하여 홍인종(紅人種)이라 불리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3. 역사

 

1) 황족(황이)

 

황족(黃族)은 마고할미의 장손(長孫)인 황궁씨(黃穹氏)의 후예로서, 한국(桓國), 배달(倍達, 檀國), 조선(朝鮮), 북부여-후삼한, 고구려-신라-백제-가야, 고려(高麗)-요(遼)-금(金)-원(元), 조선(朝鮮)-청(淸)을 이어온 종주족(宗主族)이 된다.

 

황하(黃河) 이북에 존재한 거의 모든 이족(夷族)이 황족(黃族)이 되며, 여기에는 역사상 등장하는 맥족(貊族), 예족(濊族), 한족(韓族), 흉노족(匈奴族:훈족), 선비족(鮮卑族), 돌궐족(突厥族), 거란족(契丹族), 여진족(女眞族:숙신:말갈:읍루), 몽고족(蒙古族), 만주족(滿洲族) 등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서, 특히 맥족(貊族)은 원래 단군조선 시대에 주로 육지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예족(濊族)은 물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되며, 한족(韓族)은 후삼한 땅이 되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고대중국에서 보면, 그들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句麗)를 중심으로 맥(貊)이라 기록한 것이 되며, 발해만 유역을 예(濊)라 기록하는 것이 된다. 원래 단군조선의 예(濊)는 동해(東海)에 해당하는 백두산의 동쪽 지역의 땅을 가리킨다.

 

한편, 고대중국의 역사상에 나타나는 중국의 실질적인 시조인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비롯한 후대의 왕들이 거의 모두 황족(黃族)의 일파인 웅족(熊族)의 후예들이 된다.

 

그리하여 황족(黃族)은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사이(四夷) 중의 북이(北夷)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국내륙의 동쪽이 되는 산동지역에 살았던 황족(黃族)으로서, 특히 산동반도 지역에 래이(萊夷), 개이(介夷), 우이(隅夷), 양이(陽夷)가 내륙 8이(夷)의 동이(東夷)에 속하였는데, 이중에서 래이(萊夷)는 고죽국(孤竹國)의 후예로 추정되고, 양이(陽夷)는 한반도의 양이로서 바다를 건너 이주해 온 일파로 추정된다.

 

산동반도에 소재하였던 래이, 개이, 우이, 양이는 주나라 춘추전국 시대에 제나(齊)나라에 복속되면서 서서히 흡수되었던 것이 된다.

 

2) 양족(양이)

 

양족(陽族)은 황족(黃族)의 분파로서 주로 한반도에 자리잡아 살아 왔으며, 일부는 산동반도로 건너가 중국내륙의 동이(東夷) 8이(夷)의 하나인 양이(陽夷)라고 불리기도 한 것이 된다.

 

서기전2333년 이후 단군조선 시대에 백두산 남쪽에 양족(陽族)의 개마국(蓋馬國)이 고구려 초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지금의 대흥안령산맥 지역에 개마국이 따로 있었는데 여기 개마국은 대진국(大震國) 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이 된다.

 

중국내륙의 동이에 속하는 양이(陽夷)는 산동반도 지역에 있었으며, 고대중국의 기록으로 보면 단군조선 시대 초기인 요임금시대부터 존재한 것이 되고, 주나라 시대에 제(齊)나라 부근에 있었던 것이 되며, 서기전221년 진시황(秦始皇) 때 완전히 중국에 흡수된 것으로 된다.

 

양족(陽族)은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사이(四夷) 중에서 동이(東夷)에 해당한다.

 

4) 방족(방이)

 

방족(方族)은 황족의 분파로서 주로 속말(粟末) 즉 지금의 송화강 북쪽에 살았으며, 서기전6000년경에는 한국시대 12한국(桓國) 중 수밀이국(須密爾國)이 있었던 것이 되고, 수밀이국은 단군조선 시대까지 존속하면서 단군조선에 조공을 바쳤다.

 

단군조선 시대에 수밀이국의 남서방향으로 송화강 유역의 방족(方族)의 땅에 숙신국(肅愼國)이 봉해졌던 것이다.

 

방족의 땅은 후대에 숙신(肅愼)의 뒤를 이어 말갈(靺鞨), 읍루(挹婁), 여진(女眞), 만주(滿洲) 등으로 불려졌다. 숙신(肅愼)이라는 말은 글자에서 나타나듯이, 단군조선의 수도이던 아사달(阿斯達)의 동쪽에 위치하여 해가 처음 떠오르는 지역으로서 근신(謹愼)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 된다. 말갈은 복장모습을 본딴 말이 되고, 읍루는 우수리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명칭이 되며, 여진(女眞)은 고구려의 려(麗)와 대진의 진(震)을 조합한 여진(麗震)을 소리가 같은 다른 글자로 바꾼 즉 음차(音借)한 명칭이 되며, 만주는 지명을 딴 것이 된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미식 여행지 고흥, ‘녹동항 포차’에서 추억을 쌓아요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