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길 역사연재소설]옥전여왕(玉田女王)1회

안문길 | 기사입력 2018/03/06 [19:42]

[안문길 역사연재소설]옥전여왕(玉田女王)1회

안문길 | 입력 : 2018/03/06 [19:42]

 

[안문길 장편역사 연재소설]

 

                                                 황금대도의 나라 다라국

 

옥전여왕(玉田女王)

 

 

 

 

전운

 

 

 

가야산과 수도산 일대에서 발원한 물이 마령재를 돌아 합천천을 이루고, 곧바로 황강으로 넘쳐흘렀다. 드디어 강다운 물줄기를 품은 황강은 도도히 그 자태를 뽐내며 낙동강에 합류하여 저 멀리 멀리 끝도 없는 대해를 향해 한없는 꿈을 펼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가야산을 머리에 이고 황강을 가슴에 품은 햇볕 따뜻한 땅 다라. 드넓은 평원에서는 다라국 사람들이 태평가를 부르며 흥겹게 논밭을 매고 있었다.

 

태국조 태양신 이비가지님께서 영롱히 금빛을 내려주시고, 국모 정견모주께서 촉촉이 은비를 내리시니 다달이 풍작이요 연년이 풍년이로세.”

 

다라국 백성들은 농사의 힘겨움을 신의 자비로 노래하며 노동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풀어 나갔다.

우리 철기병이 단단히 무장을 하고 백제군, 왜군과 합세하여 북으로 진군했으니 이번에는 신라군도 어쩔 수 없이 줄행랑을 치고 말거야.”

 

이미 신라군의 요충지인 관산성을 빼앗았다는군. 당연한 일이지, 손을 맞잡고 고구려를 치려고 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창을 돌렸으니 하늘이 노하신거지. 그런 배은망덕한 인간들은 망할 수밖에 없는 거야.”

 

농민들은 호미에 힘을 당기며 이번 신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올 것이란 믿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솔개 한 마리가 공중에 못 박혀 한 동안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더니 멀리 가야산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갑자기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북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쏟아지려나 보군.”

 

농군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 둘 집으로 향하였다.

 

백제 성왕은 신라와의 일전을 앞두고, 국사 겸익을 앞세워 태국사에 임하였다.

 

성왕은 대웅전 법당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개고 앉아 마음을 정제하고 부처께 간곡히 소망을 아뢰었다.

 

대자대비하신 독존이시여 이번 전투는 이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막중 또 막중한 겨룸이옵니다. 전지전능하오신 그 손길로 미천한 이 몸의 간절한 소원에 귀 기울이사 이번 싸움에 적도를 격파하고 그동안 맺힌 한을 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사방은 고요만이 감돌았다. 타는 촛불만 법당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성왕은 더욱 깊이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의 법어를 듣고자 머리를 조아렸다.

 

전륜왕, 그대는 결단코 수레바퀴를 동으로 지쳐 나가려하는가?”

 

억겁의 시공을 넘은 저쪽에서 물음이 들려왔다.

 

이미 결심한 일이 옵니다.”

 

성왕은 단호히 마음 속 결단을 부처께 아뢰었다.

 

나는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이.”

 

불좌 높은 곳에서 촛불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성왕의 귀에 스며들었다.

 

하오나 이번 싸움은 단지 힘을 겨루거나 과시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 옵니다. 저들은 그 간의 금석맹약을 어기고 도과지일의 배은망덕을 저지름에 그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계속 말발굽을 압박해 사비성 가까이 까지 다가와 사직조차 무너뜨리려는 만행을 획책하고 있사옵니다. 어찌 하늘이 공노할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이를 그저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다면 이는 불도에도 어긋나는 일이라 여겨지옵니다.”

 

성왕은 자신의 신념이 불도의 근본에서 비롯됐음을 힘주어 말하였다.

 

일체가 어제 밤 꿈과 같으므로 생사나 열반이 생겨나거나 멸할 것이 없고, 오거나 갈 곳이 없네. 얻거나 잃게 될 것이 없고,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지. 일체의 법성은 평등하여 허물어지지를 않나니 어떠한 법에도 묶이지 않고, 해탈하지 않으며 생사를 싫어하지도 열반을 좋아 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법성이네. 얻고, 잃게 될 것도 없는 세상에 피비린내를 뿌려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소리는 담담하고 은은하였다. 성왕은 부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근본이 달랐다.

 

하오나 불세계에서도 법왕을 앞세워 악귀를 쫒고, 몰아내 불법을 수호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 몸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다만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불덕을 본받아 악을 물리쳐 인간세에 화평을 심고자하는 소망 때문이옵니다. 다만 이 몸의 힘이 연약함에 불전에 나와 부처님께 빌어 도움을 얻고자하는 것이옵니다. 불덕만이 굳은 믿음이오니 저의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이번 전투에 백제 병사들의 안전과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시고 온 나라 백성이 평안히 살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성왕은 배복을 하고 다시 한 번 부처의 자비를 빌었다.

 

악귀를 물리치고자함도 윤회의 길에서 보면 덧없는 것이네. 영겁의 시간 속에 그들은 항상 그곳에 머물고 있지. 몰아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네. 다만 불성을 믿어 지금 이 세상에서 선행을 쌓아 내세에는 부처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랄 뿐. 부탁이오만 현생에 선업을 쌓아 후생을 아름답게 꽃피우시게. 단 한 번의 생명들이오. 수많은 병사들의 피를 뿌려 싸움에 이긴다한들 그것은 악귀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불좌의 높은 곳에서는 성왕의 뜻과는 다른 불성이 들려왔다.

 

하오나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옵니다. 두 손 모아 간곡히 비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성왕은 다시 한 번 부처의 자비를 빌었다.

 

저편에서도 드높이 불당을 세우고, 가득한 보시로 이번 전쟁을 승리고 이끌어 줄 것을 소원하고 있으니 부처로서도 어느 편에 눈을 돌릴까 심히 어렵고 난처한 일이네. 중생들이 벌이는 일이니 이번 전쟁은 중생들의 뜻에 맡기겠네.

 

승 겸익은 그대의 불심으로 전륜왕을 보호하시라.”

 

법당은 다시 침묵이 깊게 내려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이번 전투를 온당치 않게 생각하고 계시온 듯하옵니다.”

 

법당을 나오며 국사 겸익이 성왕에게 아뢰었다.

 

허나, 멈출 수는 없습니다. 왜국에서도 우리를 돕기 위해 천 여 명의 군대를 보내왔고, 가락국에서도 삼 만의 대군을 출정 시켜 우리를 돕고자하였으니 절호의 이 기회를 놓친다면 신라를 멸할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며 그 후에 올 신라의 만행을 막을 방법도 가늠치 못할 것이옵니다. 국사께서는 불심을 모아 이번 전쟁에 우리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부처님께 간곡히 빌어 주십시오.”

 

성왕은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기병의 주둔지인 성티산성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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