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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와'가 '여호와'로 바뀌었을까?"

한국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환한님(하느님.하나님)을 되찾는 일

윤복현 칼럼 | 기사입력 2008/12/26 [00:00]

"어떻게 '여와'가 '여호와'로 바뀌었을까?"

한국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환한님(하느님.하나님)을 되찾는 일

윤복현 칼럼 | 입력 : 2008/12/26 [00:00]
▲ 한민족의 성산-백두산 ©윤복현 칼럼
 
일찌기 '하나님(하느님, 한님, 하늘님)이 하늘의 생명수 백두산 천지에 가득모아 4줄기로 동산을 적시게 하시니 물맑고 풍년들어 배고프지 않는 지상낙원 만드시고, 어질고 착한 사람들 모여 고인돌.피라미드쌓아 하느님께 제사지내며 섬기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였다네! 만민들이 부러워하여 여기저기서 하느님의 도를 배워가니 온 세상이 환한 나라 하나의 나라 한국이였네. 그러나, 하느님대신 인간들이 하나님이 되니 혼란과 무질서와 전쟁으로 가득찼네. 하느님이 백두산 천지의 생명수로 더러운 마음을 씻고 하늘백성들로 다시 태어나라 하시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분노를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보여줄 것일세!우리 한국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우주광명의 우리 하느님을 지키느냐! 하느님을 스스로 잊어버리느냐! 하느님을 빼앗기느냐에 있는 것이다네!
 
한국을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른다. 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가? 그것은 서로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대립갈등하지 않고 먼저 양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서로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대립하지않는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섬김과 나눔의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고대 중국의 [산해경]에도 "밤낮으로 무궁화피는 지역에는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는 대인.군자들의 나라"가 있다고 기록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어떠한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고, 밤낮으로 바람잘날없이 소란하고 무질서하고 혼란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유체계와 물질문명이 들어온 이래로 남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개인.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해 있고, 겸손.절제.헌신.나눔보다는 교만하고 오만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기만하며 탐욕을 쫓는 추한 마음들로 넘쳐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과연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적시는 동방의 에덴동산이였던 한반도에서 살아갈 자격이 되는지를 한국인들 각자가 곰곰히 생각하고, 진정한 한국인들로 거듭나기위한 몸부림을 쳐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인들부터 바로 서야 인류가 바로 서지 않겠는가?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은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가로되 풍류라. 교를 베풀어 낸 근원은 국선(國仙)의 역에 갖추어 적혔거니와 실상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했다. 모든 창생들을 교화하니 들어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함 같은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요, 허식없이 처하고 말없이 교를 행함같은 것은 노자의 종지요, 모든 악한 것을 짓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행하라 함은 부처의 교화더라고 적혀 있음을 말함이라" 했다. 최치원의 기록은 우리나라에는 본래부터 종교들의 근원이 되는 '현묘한 도'로 표현되는 풍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풍류는 바람처럼 흐른다는 의미다.

성서에서도 성령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라고 했다. 나라와 민족이 필요로 할 때 출현하여 할 일을 하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선인들이다. 단군들도 임기를 마치면 산으로 들어가 호랑이와 함께 산신령이 되었다고 이야기가 전해오는 배경이며, 한국인들이 유득히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은 집단무의식의 행동이라 하겠다.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들을 일컫는다. 우리민족의 신앙은 풍류신앙이다. 교리적인 기독교.불교.유교처럼 무슨 틀에 가두는 신앙이 아니다. 갇히지 않고 우주를 마음껏 나는 자유혼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을 우상숭배하듯이 신격화하거나 자유을 억압하는 구조악이나 권력에 저항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라던 베트남의 호치민이나 중국의 등소평이 위대한 인물들인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대부분 종교들은 자신들의 교리틀에 갇혀 집단이기주의화되고, 예수.석가.노자.공자가 상업주의적으로 수단화되고 있다.
 

▲  온누리를 광명으로 비추겠다는 고구려 삼족오 © 윤복현 칼럼

우리 민족의 이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인.한웅.단군속에 임재했던 광명의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일이다. 광명의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들이 득세하고 빛은 억압당하고 탄압받는 것이다.우리 민족의 국운이 활짝 열릴려면 본래 우리 민족의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그럼 기독교 성서가 말하는 에덴동산의 실체가 어디이며, 불교.도교.유교의 원뿌리가 어디인지를 알아 보도록 하자. 빛은 본래 하나이지만, 여러개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줄기들이 본래 광명을 찾아와야 세상의 종교와 종교인들과 인류가 하나의 하느님을 모시고 모두가 하느님이 되어(인내천=사람이 하느님이다) 홍익인간 재세이화 세계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선악 지식의 나무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진주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진주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위 성서구절은 구약성서 창세기2장에 기록된 너무나 유명한 내용이다. 위 7절은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12한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서]를 정리하여 [참전계경]이라 이름붙였는데, 을파소가 [참전계경]의 배경에 대해 자필했다고 볼 수 있는[참전계경]의 서문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즉,'여와'가 흙을 빚어 사람의 상을 만든 다음 혼을 불어넣어 7일만에 사람이 되게 한뒤 그들을 모두 전쟁에 사용하니,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단기 4281(1948)년에 채록된 함흥지역의 셍굿두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럼 여호와와 을파소가 정리했다는 '참전계경' 은 어떤 연유로 나오게 될 것일까?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 때에, 압록곡 좌물촌 태생의 사람으로서, 고국천왕 13년 안유(安留)의 천거로 대정(大政)을 맡아 유명한 재상이 되어서 우리 역사에 영명(英名)을 남겼다. 을파소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때 대신(大臣)을 지낸 을소(乙蘇)의 손자이다. 을파소는 일찍이 평안북도에 가로 걸쳐 있는 묘향산맥중의 백운산중에 들어가, 하늘에 원도하면서, 《천경신고(天經神誥)》를 면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자시(子時)에 홀연히 오색구름에 군림(君臨)하시어 내려오시는 국조 단군(檀君)성신(聖神)을 참알케 되고, 그 은연한 계시(啓示)를 받아, 어느 석굴암벽에서 하늘의 글(天書)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선생은 이에 석굴 한쪽 바닥에 고요히 결가부좌하고 삼법회통(三法會通)의 청정한 심상(心相)으로 그 하늘의 글을 정관(靜觀)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천서는 기본 근간(基本根幹)이 되는 이른바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의 팔리훈(八理訓), 곧 기본 강목과 그 팔리훈 낱낱의 실덕(實德)을 응분하여, 체(體)와 용(用)을 각기 분설 한 총 366훈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판별해 내었던 것이다.
 
을파소는 이 같은 천서(天書)를 수학정진(修學精進)하고 낱낱이 깨달음마다 주서(註書)하고 말하기를,“신시이화(神市理化)의 세상에 팔훈(八訓)을 날줄(經度)로 하고, 오사(五事)를 씨줄(緯度)로 하여, 그 교화가 크게 행하여져 홍익제물(弘益祭物)하였으니, 참전(參佺)의 이룬바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을파소는 이 천서(天書)를 일러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 하였던 것이다. 참전(參佺)이라 함은“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됨을 꾀한다”는 뜻인 것이다. 이는 대시(大始)에 밝은이가 배달국 신시(神市)에서 인간의 366여의 일을 주재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늘은 비록 말이 없으나,‘하늘님은 오르락내리락 하며 두루 보살피는 것’이니, 나를 알고자 하는 자는 열심히 인간 366사를 연구함으로써 그 근본을 성실하게 하여, 참전(參佺)으로서 깨우침을 얻게 되는 것이다."(금척 천부경-송래선)
 
▲태호복희와 여와  ©윤복현 칼럼
성경 창세기 2장7절의 성구와 을파소가 정리한 [참전계경]의 서문내용이 같으니, 결국 '여호와'는 '여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와는 너무나도 유명한 태호복희씨의 여동생이자, 태호복희의 부인이다.
 
그럼 백과사전에 기술된 여와는 어떤한 존재인가?
 
백과사전에는 "여와(女?)는 중국 고대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신이며, 삼황오제 중 한명이기도 하다. 인간의 머리와 뱀의 몸통을 갖고 있으며 복희와 남매라고도 알려져 있다. 여와의 신화에는 홍수와 관련된 신화도 있는데, 신화에 따르면 갑자기 하늘에서 많은 비가 내려 온천지가 물에 잠겼다고한다. 이에 여와는 오색 돌을 빚어서 하늘의 갈라진 곳을 메우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쳤으며 갈짚의 재로 물을 빨아들이게 하였다고 한다."로 기술되어 있다. 태호복희씨가 중국인문학의 시조로 알려지다보니 여와또한 마치 중국사람인양 기술되어 있는데, 시급히 동이족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럼, [한단고기]에는 태호복희와 여와가 어떻게 기술되어 있을까?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진陣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한웅족의 배달국이 있는 백두산족임을 알 수 있고, "청구.낙랑을 걸쳐"는 고대 동이족들이 살고 있는 산동.중원지역을 의미한다. 이미 고고학적 유물로 입증된 사실이지만, 한4사군 논쟁으로 유명한 낙랑이 바로 산동.요서지역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양지역에 개국한 최씨 낙랑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태호복희씨는 산동.중원지역에서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치가 그 원리를 인용하여 현대 컴퓨터의 원리가 되었던 8쾌를 만들어 중국인들이 전설적인 인문학의 시조로 떠 받들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유소와 함께 서방에 이름을 크게 알렸다."는 것은 중원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중동문명을 일으키는 선구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고고학적 근거는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발굴된 태호복희와 여와 그림이 증명하며, 창세기 2장7절의 내용이 증명하듯이 기독교 구약성서에 '여호와'로 기술된 여와가 입증한다. 유대인들의 비밀조직이라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자와 컴파스'다. 그런데, 태호복희와 여와의 그림에도 '자와 컴파스'를 들고 있다.
 
이것은 현재는 백인들의 침략으로 혼혈족이 되어 버렸지만, 고대 이스라엘민족은 태호복희와 여와의 동방의 한국문화를 계승한 슈메르인들의 후손임을 증명한다. 본래 이스라엘 민족과 한국민족은 체형(머리가 검고 키가 작다. 두상골격이 같다)과 풍습(이스라엘민족의 해방절인 유월절에 양의 피를 대문에 바른다. 한국도 동지날에 붉은 팥죽을 대문에 바른다. 한국처럼 이스라엘 민족도 본래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지낸다. 이스라엘민족도 사람이 죽으면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한다. 두 민족모두 향어와 붕어를 먹고 아궁이 부삽을 사용한다. 두 민족 모두 메시아 사상이 강하다. 고대에는 두 민족모두 소도(지성소)가 있어 죄인이 소도로 도망치면 처벌하지 않았다. 두 민족 모두 여인들이 외출할 때는 얼굴을 가린다. 두 민족 모두 혼인할 때 신랑은 신부얼굴을 보지 못했다. 두 민족 모두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추석날이 같다 등)이 동일한 민족이다. 이것은 태호복희씨족의 동이전통과 풍습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풍습들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만주를 자기 조상들의 땅이라면서 나라를 세우고자 유엔에 청원한 배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태호복희는 《한단고기》에 배달국의 제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열두 아들 중 막내라 하며, 그의 후손이 현재의 산시 성에 살았다고 한다.또한 성씨는 풍(風)로 전해진다. 그는 음양의 변화 원리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이 팔괘를 이용하여 길흉화복을 점쳐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주역》의 사상적 기초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도교에서도 그를 동방의 천제라 일컫는다. 그 만큼 학문이 뛰어나고 통치력이 뛰어난 동이족 출신이였음을 의미한다. 이런 태호복희씨의 여동생이자, 부인이 바로 여와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여와'가 '여호와'로 바뀌었을까?[보충자료] 창세기 15장 6~7 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여와)를 믿으니 여호와(여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슈메르인 아브라함이 동방에서 온 여와의 천지인 삼신신앙을 믿고 따르니 여와가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삼신신앙(삼일신고의 핵심)을 전수하고 계승하게 했다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기록을 보면 처음에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들은 3사람으로 나온다. 그것은 3을 중시한 한국의 삼신신앙의 흔적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아브라함의 하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들인 아랍인들은 아직도 흰옷을 중시하며, 반드시 속옷으로 흰옷을 입는다. 예수시대에 불교처럼 산속에서 명상수행했던 세례요한의 에세네파도 흰옷을 고수했다. 이것은 우리 동방족의 백의사상이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팔레스틴에 정착하기 전에는 여와를 통치의 주인으로 삼았다. 그래서 각 지파장 회의에서 왕의 자리는 비어 두었다. 이것은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권시대이전에는 한국의 신앙사상이 이스라엘민족을 지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베옷을 입었다. 베옷은 한국인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동방족 여와가 전수한 한국의 전통과 신앙사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와가 '성경'의 여호와로 변했다는 증거는, 본래 자비와 사랑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었던 여와가 '구약성서'에서 여성신인 여호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와를 모태표상인 레헴(rehem) 또는 라하밈(rahamim=자비를 나타내다) 등의 의미로 자주 쓰고 있다. 특히 '구약성서' '예레미아'에서는 "여호와이신 어머니는 비애를 은혜로 바꾼다"는 등 여성적, 모태적 표상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예레미야12:5, 30:18).이처럼 적어도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로 해석되어졌던 것이다.
 예레미야는 법과 제도보다는 먼저 마음을 새롭게 바꾸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이 본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법과 제도를 바꾸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마도 혁명과 개혁의 본질을 제시하는 내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마음의 새 계약론"은 우리 민족의 [천부경]에 나오는 "본심본태양앙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본래 하나의 명칭이었던 여와는 '성경'에서 하와와 여호와로 나뉘어 인류사의 첫 여성으로, 그리고 우주 창조신으로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으로 이주한 동방족과 수메르족은 조상이 같다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문정창, 임승국, 김태영 등의 학자들도 '여와'가 이스라엘 민족신인, '여호와'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정창은 '기원전 1200년경에 모세가 '창세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신을 '조선피불(chosen people=주신피불)'이라고 했으니, 이것이 곧 그들 사상의 고향을 가리키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슈메르 갈대아 우르에서 여와을 신으로 모시고(동이사상) 출발한 아브라함에서 출발한 이스라엘민족이 슈메르인들의 후손임을 증명한다 하겠다. 구약성서를 보면 여호와는 전쟁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전승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을파소의 [참전계경]서문이 그 해법을 준다하겠다.  

▲홍산문화 여신상 © 윤복현 칼럼
즉, "'여와'가 흙을 빚어 사람의 상을 만든 다음 혼을 불어넣어 7일만에 사람이 되게 한뒤 그들을 모두 전쟁에 사용하니,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을 흙으로 빚어 전쟁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을 모성신으로 상징화하여 악령이나 외침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마고성의 마고할미신앙같은 모계사회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예컨대, 진시황의 지하무덤에서는 흙으로 빚은 많은 군사들의 석상들이 출토되었다. 진시황제의 지하 군단인 병마용들은 7,000명이 넘는 군사들과 말 500필, 전차 130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하군단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명령만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 신체의 비례와 감정표현, 자세의 다양함등을 살펴볼때 오히려 살아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만약 고대에 이런 생동감 있는 조각품에 진짜 사람들을 섞어 놓았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조각품을 만든 사람을 진짜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착각해 그를 추앙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방법을 여와가 전쟁 중에 사용했고, 그래서 후세인들이 여와를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기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가능성은 청동기문명의 주역들로서 단군족(고리족)의 터전이였던 발해 연안의 북부(요서지역) 홍산문화유적지 우하량 돌무지무덤 부근의 여신을 모시는 신전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3500년경의 '소조 여신상'의 세련된 조각 기법을 통해 충분히 제기해 볼수 있다. 중국측의 이러한 여와 이야기의 구성원리는 우리의 나반과 아만 이야기의 구성원리와 거의 같다.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고 오색의 돌을 반죽했다는 내용은, 인류 최초의 여인이었던 아만이 아이를 낳고 그 후손이 오색인종이었다는 것과 같다. 또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과 그 대용품으로 등장하는 거북은, 나반과 아만의 혼례식때 나타난 4신수(주작, 거북, 백호, 청룡) 또는 5신수(곰 포함)과 같다. 인구가 적었던 고대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했다.그래서 여성신이 등장하고 모계사회가 주를 이루었으나,인구가 증가하면서 먹는 문제가 심각해졌고 여성들보다 신체가 강한 남성들이 사냥을 하러 나가야 했고, 이웃 씨족.부족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급기야 전쟁까지 하게 되면 남성들의 존재가 더욱 필요했다. 이러한 경제사회환경이 여성중심사회에서 남성중심사회로 변화시키고 만다. 그래서 여성신들이 사라지고 남성신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여성신들이 남성신들에게 살해되는 그림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복희와 여와는 태우의 환웅천황이 낳은 13남매 가운데 막내아들과 고명딸로 태어났다. 그 무렵 우사의 직책에 있던 태호 복희씨가 환국시대의 '천부경'을 바탕으로 역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환역桓易이다. 이 환역이 나중에 주나라에 전해져 '주역'이 되었다. 이 한역의 또 다른 명칭이 복희팔괘 또는 선천팔괘로, 태극기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원래 신화란 전래되는 과정에서 각색되고 첨삭되기 마련이다. 또한 원형을 좇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여과시켜야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복희와 여와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아들과 딸로서 기원전 3528~3413년의 사람으로 알려져있다.한역(중국:주역)을 만든 태호복희씨는 역사에 역리의 원조로 큰 자취를 남겼으며, 또한 그의 천天사상과 어진 인(仁)의 가르침은 뒤에 공자가 이어받아 유교를 창시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기원전 3418년 맏형 다의말이 아버지 태우의의 뒤를 이어 배달국 제 6대 환웅천황으로 등극하자, 앞에서 이야기 한바와 같이 태호 복희씨는 누이동생 여와씨와 함께 배달국을 떠나 서쪽의 진陣에 이르러 터전을 잡고 계속 서쪽 진출을 꾀하여 메소포타미아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영민했던 태호복희씨도 천명은 어쩔 수 없었든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여와씨는 오빠이자 남편인 태호복희씨의 유지를 받들어 메소포타미아에 지속적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바로 이러한 여와씨의 덕교德敎가 그 무렵 사람들의 의식 속에 '여와 신'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성경'에 수록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태호복희씨의 성은 원래 새중의 새인 봉鳳과 같은 의미인 풍風씨였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성이다. 그러나 15대 만에 대가 끊겨 '풍골 좋다, 풍채 좋다, 풍신 좋다'는 등의 용어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대신 2순위에 있던 염제 신농씨의 강시성이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다시 인류 최초의 성으로 자리매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리하자면 신시배달국의 중심지였던 백두산지역에서 환웅천황의 막내아들과 딸로 태어난 태호복희와 여와가 혼인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것은 현대적인 윤리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도 왕이 왕의 누나와 여동생과 결혼을 하였다.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집트 티우(치우)왕조도 동북아시아인들이다. 바로 동방족(한국인들)이였다. 이집트 문명은 인류고고학적으로 슈메르에서 기원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치우왕조는 한국인들의 정통부적을 제사그릇에 새겼으며, 스핑크스.달의 여신은 한국여성의 얼굴이며, 달의 여신에게 바치는 꽃이 한국의 꽃 무궁화였다. 또한 초기의 이집트 피라미드 모양은 만주의 태왕릉이나 슈메르의 지구라트처럼 원형이다. 이집트 왕족이 태호복희와 여와처럼 친족끼리 결혼을 했다는 것은 현대적 시각으로는 근친상간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고대에서는 이방인들과 피를 섞이지 않고 자기혈족을 보존하려는 배경으로 충분히 볼 수도 있다.  

▲슈메르 씨름석상 © 윤복현 칼럼
세계에서 두뇌가 가장 우수한 민족은 한국인들과 유대인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사실은 하버드대학의 수석졸업자들이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유대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두뇌가 우수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백인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이 된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류고고학적으로 기원전 3-4천여년전에 생겼다가 기원전 2천여년전에 바빌로니아를 세운 아모리인들에게 패하여 다시 본향인 동방으로 이동해 갔다 전하는 슈메르인들이 고대 동방에서 이동해온 동북아시아인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역사학자들은 아무도 없다. 기독교의 성서설화(에덴동산.노아홍수.바벨탑 등)와 구약성서의 [시편][욥기][잠언]등 지혜서들의 원형들이 바로 이 슈메르인들의 문헌들이라는 사실또한 부인할 성서학자들은 아무도 없다. 창세기에 에덴은 동방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고난을 이겨낸 고난신학의 주인공 욥기도 동방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그럼 동방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동방이란 바로 중국.한국.일본이 위치하는 동북아시아를 말한다. 그럼 한중일 3국에서 어느 나라가 동방의 중심국가이며 민족이가 했을때 마땅히 한국이다.
 
국호자체가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문명 등 인류문명을 꽃피우게 하는 12한국의 한국이요, 중국문명의 발원지인 요서지역인 홍산에서 청동기문명을 일으킨 고리(코리아=고구려)족이 단군조선을 개국하여 산동.중원지역의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인 동이족의 나라들을 통하여 중국문명을 꽃피우게 하고, 부여와 고구려와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몽골과 백제,그리고 백제에서 갈라져 나온 일본을 개국한 조선과 코리아이기 때문이다.

 
이 동방에서 슈메르인들이 중동지역까지 온 것이다. 슈메르는 발음상 수밀이로 12한국 중 하나였던 수밀이국이다. 우리의 기록에도 나오고 서양 역사에도 등장하는 나라는 수밀이국(수메르)과 우루국이다. 서구의 역사 학자들도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원주민이 아니라 동방에서 이주해 온 동북아시아 산악민족이었다고 밝혀 냈으며, 그 이동 시기는 기원전 5000~4,000년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동방의 문화 민족은 우리 한국민족(동방족)뿐이었다. 중국민족, 즉 한(漢)족은 한국 시대에 민족 자체가 아예 형성되지 않았을 때이며, 배달국 시대에 가서야 역사상에 등장한다. 그래서 신시시대 우리 조상들은 그들을 변두리에 사는 민족이라 하여 지나족이라 불렀으며, 최초의 지나국 통일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나 되어서의 일이다. 또 서양 문명의 기원을 수메르라고 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보면, 이시기의 서양에도 문화민족은 없었다.

다시 말해 수메르는 우리 민족이 12한국시대에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해 가서 세운 나라이며 배달국 시대에는 5대 태우의 한웅천황의 딸 여와씨가 한민족의 천부경 정신(하느님 사상)을 수메르에 전파했다. [한단고기]에서 태호복희가 서방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단군 왕검의 부하인 유호씨가 4300년전 메소포타미아에 천부경의 원리를 전교했으며, 15대 단군 대음천황 때와(B.C. 1660) 27대 두밀천황때에(B.C. 997) 수메르 사신이 특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역시 15대 대음천황때(서기전 1652)우루인 20명을 염수(홍안령 근처지역)근처에 정착하여 살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볼 때 수메르는 단군 조선시대까지도 모국(母國)과 교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배달국과 단군조선(진한=진조선)의 중심지 송화강은 소머리강을 의미하며 오래된 편두유골들이 발굴되는 지역이다.한다. 슈메르인들(소머리인들)은 바로 백두산지역에서 유라시아 초원길을 따라 중동지역으로 이주했음을 알 수 있다. 슈메르인들의 원 고향은 소호금천씨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다. 소호금천씨족의 나라는 고대 중국문헌에 중국 동해밖 골짜기(백두산 지역)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소호금천씨는 모계사회였으며 곰을 숭배하던 곰족이다. 슈메르인들도 모계사회였으먀, 편두풍습을 가지고 있었음이 슈메르 초기유적지인 아모르 지역에서 발굴된 유골로 입증되었다. 곰을 숭배했던 흉노(훈족)도 편두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가야의 김씨왕족들이 바로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씨와 흉노의 후손들이다. 소호금천씨는 황제헌원과 함께 백두산지역에서 동이족이 대거 거주하는 산동지역으로 이동하여 모계사회였던 대문구문명을 건설하여 중국문화를 꽃피우게 한 중국문명의 선구자들이다. 소호금천씨족이 백두산지역에서 1차로 산동지역이동하고 2차로 소머리인들이 유라시아 초원길을 따라 중동지역으로 이동한 것 같다. 그러니까 12한국의 하나였던 수밀이국은 원래 백두산의 위쪽지역인 송화강지역에 존재했으며, 일부가 배달국시대에 초원길을 따라 중동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치우족과 태호복희.여와세력이 중동지역에 터를 잡은 슈메르지역으로 이동하여 치우족(힉소스족.히타이트)은 중동지역과 이집트지역을 정복하고 치우왕조를 세운 것 같다.
 
황제헌원-소호금천씨족-슈메르에 대해 정리하면, 12환국의 하나였던 수밀이국의 후예인 슈메르는 서구문명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이며 세계최고의 도시문명을 메소포타미아에 꽃피웠다. 수메르의 원음은 "소머리"에서 전음되었다고 한다. 소머리(우두 : 牛頭-首頭. 牛頭도 같은 맥락임)는 모든 것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한, 즉, 하나님을 의미한다. 춘천의 우두(牛頭)산, 가야산의 우두(牛頭)산, 진해의 우(牛)산, 일본의 우두천왕(牛頭天王)-우두사(牛頭寺), 우리말 우두머리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인도에서도 최고 높은 산을 수메르산 즉, 수미산이라 하며 지구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을 말한다. 또한 수메르 제1왕조를 건설한 엔릴영웅은 하늘나라(桓國은 하늘나라라는 뜻이다)에서 왔다고 수메르의 기록은 전하며 그를 배달국시대 소호금천씨족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고대 중국 문헌인 [산해경]에 소호금천씨족의 나라는 동해밖에 있다고 했다. 중국방향으로 동해밖 골짜기면 우리방향으로는 서해밖 한반도다. 즉, 소호금천씨족은 본래 한반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백두산지역 압록강 골짜기에서 중국 산도반도로 들어와 대문구문화를 일으켜 동이문화를 중원에 전파한 사람들이다. 이 소호금천씨가 중국시조로 알려준 동이족 출신의 황제헌원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는 씨족이다. 김수로.김유신.김알지 등 신라.가야왕족들의 모두 소호금천씨의 후손들이다.  

▲소호금천씨족의 대문구 문화유물-태양그림 ©윤복현칼럼
황제헌원씨 - 소호금천씨 - 전욱고양씨 - 제곡고신씨 - 요임금 - 순임금. 중국에서 전해내려오는 고대 임금들은 위의 순서이다.( 그 이전에는 태호복희씨와 염제신농씨(강신농씨)가 임금 즉 지도자라고 전해내려온다)그런데 산해경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가 그들의 동해 (황해) 건너 동쪽에서 전욱고양씨(?頊高陽氏)를 키웠다고 하면서 이들 중국 고대 임금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고 하고 있다.사마천의 사기에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를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의 아들(子)라 했다 해서 꼭 [친 아들]이라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황제계승자를 아들(子)자로도 사용한다.사마천은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보다 2천수백년이나 후의 인물이고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당시의 일을 정확히 알수는 없었을 것이고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를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의 친아들로 보기 보다는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씨 다음 시대의 중국 땅의 지도자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소호금천씨와 전욱고양씨씨가 4천 수백년전 인물이기 때문에 압록강변 출신이라 보는 것이다. 이들 동이족 중 소호금천씨가 중동으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초원길을 누비며 중국과 유럽과 중동을 지배한 흉노족이 바로 소호금천씨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슈메르인들이나 흉노족이나 가야인들이나 남미의 인디언들이나 공통적으로 편두풍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는 편두풍습이 오랜 전통이였던 동방족의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12한국 중에 '우루'는 수메르어로 "소"를 의미하며,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수메르의 수도이고, 도시국가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갈대아 우르(이스라엘민족과 아랍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의 고향)의 전신이라고 한다. 슈메르는 우리말로 소머리다. 오래된 편두유골들이 발굴되는 만주의 송화강은 소머리강을 의미한다. 슈메르인들은 바로 백두산지역에서 유라시아 초원길을 따라 중동까지 들어간 동이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고고학적 고찰을 통하여 발견되는 슈메르인들과 한국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인 드라비다족의 언어는 드라비다어이고, 그중 가장 오래된 언어가 타밀어로 현재 싱가폴 등에서 국가공용어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수메르어가 한국어. 타밀어. 드라비다어와 같은 교착어라고 말하는데, 고대한국에서 수메르, 인더스 문명이 나왔음을 알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대영 백과 사전에도 현재 "수메르인의 교착어가 터키어과 다르고 한국어와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수메르인들의 상투. 씨름. 앉은 자세 등이 우리나라와 같으며, 그들은 파미르 고원에서 나온 파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또 수메르인들은 머리털이 검고 곧으며 서양인보다 체구가 작고, 서양인들과 달리 머리 뒷부분이 평편하다. 그들의 문자는 설형(쐐기 모양)문자로써 배달국시대의 복희씨가 만든 팔괘부호와 비슷하다. 수메르인도 하늘신-안, 대진신-엔키, 대기신-엔릴 등 삼신을 주로 믿으며, 한국에는 삼신사상이 있어 오늘날의 그 전통이 삼신각으로 남아있고, 자식은 삼신할미가 점지해준다는 전통적인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 해 준다. 수메르인들은 피라밋. 지규랏 같은 고탑. 층대를 만들어 불로장생과 행복을 빌었는데 한민족이 신선도의 소도에서 제사를 드리고 복을 빌어온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수메르의 12진법, 24시간, 60진법 등은 배달국 시대의 12지와 60갑자에서 전해진 것이며 한국, 이스라엘, 수메르의 음력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또 세계최고의 법전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과 모세의 5부서의 원전이 수메르의 남무 우루법전임을 미국인 크레이와 룻쯔가 확인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고대 한국의 사상에서 수메르 사상-> 바빌로니아 사상->모세사상->예언가 사상->예수사상으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는 로마병사 판텔라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 예수도 성서의 복음서 기록에 따르면 족보상 수메르 후손인 아브라함의 42대손이다.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비유대인 가문으로 배다른 형제의 부인을 탐하고 민중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헤롯권력에 자유혼으로 저항하다 결국 참수당한 세례요한의 신앙집단은 과욕이 아니라, 금욕.절제를 중시하며 산속에서 명상을 하고 아랍인들처럼 흰옷을 즐겨입었으며, 인도에서 불제자가 되어 돌아온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배경은 맥으로 올라가면 우리민족의 풍류도에 기원한다 하겠다.
 

▲ 길림성 무용총 내부벽화 -왼쪽에 음식상을 놓고 앉아서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의 손님은  신분이 확실치는 않으나,  '검은 빛깔의 조복(皁<검은 비단 조, 검을 조>服) 을 입은 선인'이란  의미의 '조의선인'들의 모습이 이들과 같았으리라 추정된다.   ©윤복현 칼럼

명심하라! 종교나 신앙이란 결코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는 철저히 현실참여적이며, 내세천국이 아니라, 지상천국건설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단군조선이나 고구려가 장구한 세월을 버틴 배경에는 평소에는 명상과 수행을 하다가 나라가 위급할때 목숨을 바쳐 구하려했던 천왕랑이나 조의선인같은 민족신앙단체가 있어서였다. 따라서 명상이나 수행을 하면서 백성들이 권력에게 수탈당하거나 억압을 받고, 나라가 어렵거나 위급해도 행동하지 않는, 종교와 신앙을 빙자한 모든 종교단체들은 본질적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단체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시대에 하느님을 팔아 장사하는 예루살렘의 사두개파 제사장들이나 헌금이나 받으면서 하루벌어 먹고사는 민중들에게 지키지도 못할 수백가지 율법준수를 강조하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바리새인들이나 동일한 집단들이다.
 
그럼 동방의 장구한 세월동안 한국인들과 함께해 온 백두산에 대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속해 있었던 대종교의 자료와 함께 알아 보도록 하자.

먼저「하느님」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알아 보자면, 하느님은 예수가 유대 나라에서 태어나기 2천년 이전부터 우리 한민족이 섬기던 고유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모시던 하느님은 우주를 낳으신 하느님이요(生天) 온갖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요(造物) 또한 인간을 낳으신 아버지 되시는 하느님이시다(生我). 그리고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다 (主無數世界). 우리 민족은 흔히 생사가 달린 죽음의 자리에서나 긴박한 일을 만날 때 저절로 '아이쿠 한울님(하나님 하느님)!'하고 소리를 내게 된다. 이것은 저절로 우러나는 소리, 생명의 소리다. 생명의 주인이신 우리 하느님을 찾는 본심의 소리인 것이다.
 
기독교의 신은 여호와신, 야훼신이다. 같은 기독교라도 중국에서는 상제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미사마로 부른다. 카톨릭 백과사전에 보면 '선교의 편의상 한민족의 신인 하느님을 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유대민족의 신인 여호와, 즉 여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대종교 자료]
 
그럼 성서의 에덴 동산은 과연 어디일까 ?
 
많은 신학자들과 성경 고고학자들이 에덴 동산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은 유프라테스 근처나 티그리스 강 주위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고대에 이전원(伊田園)[=이덴]이라고 표기한 중앙 아시아 곤륜산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빛은 동방에서!라는 로마의 격언을 무시하는 해석이다. 해는 반드시 동방에서 뜨서 서방으로 지는 법이며, 고인돌의 천국이 한반도이며, 피라미드의 천국이 백두산지역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분석에서 오는 잘못이고 오류다. 12한국을 건설한 한인씨족의 시조는 황궁씨다. 황궁씨는 마고성에서 북쪽의 천산주로 떠난 사람이다. 한인은 천산에서 거주했다고 <한단고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고성을 중앙 아시아에서 찾으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마고는 여성지도자로 마고시대가 모계사회였으며,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한웅족이 들어온 이후에도 모계사회가 강하게 뿌리내린 지역임을 이해한다면 마고성을 중앙 아시아에서 찾으면 안된다. 마고성은 2만년 전 기후변화로 바다속으로 수몰된 한반도 서남해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한자 '바다 해'가 이미 여성지도자를 나타내는 갑골문자이다. 지리산 등 한반도에 마고할미전설이 강하게 뿌리내린 배경이다.
 
그리고 초기 피라미드 무덤군들이 백두산지역에 산재되어 있고, 피라미드무덤양식이 한반도지역의 고인돌무덤양식(남방식)에서 기원했다면 마고성을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규정하면 역사이해에 있어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빛은 동방에서!라는 로마의 격언이 이미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사학자와 종교가들이 상호협조 아래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한다. 아래는 필자의 생각이다.
 
성경에는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은,
 
첫째 - 동방에 창설하셨다고 했다.
둘째 - 에덴 동산에서는 4강이 발원(發源)한다고 한다.
셋째 - 동선에는 각종 보석(황보석 금강석 청보석 화강석)으로 둘러 쌓였다고 했다.
넷째 - 하느님의 산이며 거룩한 산, 즉 성산(聖山)이라고 했다. 이 네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산은 과연 어디일까 ?

 
1) 동방의 에덴

예로부터 동양(東洋) 삼국(三國) 하면 중국 한국 일본을 일컬었다. 중국에서는 네 가지 조건이 맞는 산을 찾을 수 없다. 일본은 둘째, 셋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산이 없다. 넷째 조건인 성산(聖山) 역시 일본인들은 후지산을 말하지만 후지산은 화산(火山)으로 오래 전에 죽은 산이다. 한국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동쪽에 우뚝 솟은 동방의 성산(聖山)이다. 주역에 보면 간(艮)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했다. 간은 산이요 문물이 시작된 곳이다. 간방(艮方)은 동북방인데 그곳은 바로 백두산이다. 사마천 사기에는 지금부터 2100년 전에 동이의 동북녘 땅에 이 나라의 한밝산(백두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새 짐승들과 풀, 나무들이 모두 희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광세의 태백신가(太白神歌)에서는 '해와 달이 정기 쌓아 성인을 저 나무 밑에 내렸네.해와 달이 함께 밝고 하늘 땅이 함께 커서 나면서부터 이미 상서롭고 신령스럽네 '우리 한민족의 창세기인 [삼국유사]와 [한단고기]에서는 '옛날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시고 인간 세상을 탐내시거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뜻을 아시고 삼신산인 백두산을 내려다보시고 가히 홍익인간 하겠다 하시고는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시면서 내려가 다스리라' 하시었다. 그리하여 신시(神市), 즉 하느님이 거하는 성스로운 곳이라 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참전계경]에서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사람됨의 그릇을 만듦이다. 만사람을 한 형상으로 만드시며 만 성품을 한 성품으로 만드시느니라(造器白天이 僞造人器也라 造萬人一人像하며 造萬性一品이라)' 고 했다.
 
2) 에덴 동산에서 4강이 발원한다고 했다.
 
[거여록]에 이르기를 산은 모두 3층이며 높이가 200리에 가로는 1000리요, 그 꼭대기에는 천지가 있으니 둘레가 80리요, 혹은 3,40리라고도 한다. 이 천지는 4강의 시원이 되었는데,
 
 첫째 강은 서쪽으로 흐르는 압록강이다. 신의주와 단동을 이어 흐른다고 하여 앞누비 강이라고도 하는데 백두산 천지에서 직접 흐르는 유일한 강이다.
 
둘째 강은 북쪽으로 흐르는 송화강, 또는 혼돈 강이라고 한다. 송림 사이로 흐른다 하여 솔꽃 강이라고도 하며 만주대륙을 적신다.
 
셋째 강은 동쪽으로 흐르는 두만강이 있다. 중국의 도문과 남양시를 이어 흐른다. 이 강은 700리를 뻗어 동해에서 만난다.
 
넷째 강은 토문 강(土門 江)이다. 한반도 남쪽으로 흐르는 강인데 형제 폭포와 삼지연을 담아 백두대간의 혈을 타고 내면에 흐르는 강이다.(숙종 38년의 표석한 정계비를 놓고 송화강 두만강 토문강 정원의 경계비를 놓고 북조 청의 길림 장군이 논한 적이 있다.)
 
3) 동산에는 각종 보석이 있는데 황보석 금강석 화강석으로 둘러 쌓여 있다고 했다.
백두산은 16개의 봉우리로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한 옛날 화산폭발에 의하여 각종 화강석 금강석 황보석등이 있어 아침햇살이 빛날 때는 각기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영롱히 발하고 있어 장관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한 황혼이 지는 저녁노을에 반사된 화강석의 찬란한 빛은 백두산의 위용을 한층 빛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4) 하느님의 산이고 성스러운 산이라 했다.
한민족은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聖地)요, 영산(靈山)으로 늘 그리워하며 살아 왔다. 하느님께서는 홍익인간의 대 이상을 세우시고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을 찾으시다가 백두산을 정하셨다고 했다. 그리하여 단군왕검께서는 9한을 통합하시고 백두산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시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

 
[선가서(仙家書)]에서는 '삼신산(白頭山)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불로초가 있는데 일명 진단(眞丹)이라 했다. 또한 새 짐승 초목이 모두 희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서의 물길전(勿吉傳)에는 '백두산은 신주의 황을 일으킨 신령한 땅이니 소도, 즉 제천의 옛 풍속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성스러운 산이므로 산에 오를 때는 대소변을 모두 담아서 내려 왔다'고 전한다. 한족(桓族)의 조상숭배(祖上崇拜)도 이곳에서부터라고 전한다. [삼한비기]에는 '신인(神人)이 오르내리는 것은 실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영광의 역사의 시작이 백두산이요, 하느님(한님.하나님) 공경의 제단을 쌓음도 바로 백두산이다. 그러므로 [神市]라 했다. 그리고 고기(古記)의 기록에 백두산을 이전원(伊田園), 직역하면 에덴동산이라고 분명히 기록해 주고 있다. 또한 <삼일신고해설(三一神誥解說)>에서는 우리 민족 배달문화의 발상지인 백두산을 '지상천궁(地上天宮)'으로 숭앙하고 있다. [대종교 자료]
 



 

백두산에 대한 대표적인 명칭과 기록된 문헌을 살펴보면, 불함(不咸)[산해경], 개마(蓋馬)[후한서], 도태(徒太)[위서(魏書)], 태백(太白)[古記], 백산(白山)[括地志], 장백(長白)[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원일통지(元一統志)·요지(遼志)] 등이다. 그러면 백두산이 위와 같은 산명(山名)에 나타나는 정신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태백산(太白山)과 백산(白山)의 의미를 살펴 보면 광명사상(光明思想)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먼 옛날 우리 선민(先民)들이 모여 살던 집단 거주지 부근의 고산(高山) 명산(名山)의 이름을 대개 이렇게 광명(光明) 신성(神聖)한 산악(山岳)이라는 의미로 '밝달' 또는 '밝뫼'로 불렀으며 그것이 한자명 '백산(白山)'등으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백산, 태백산은 곧 우리말 이름 '밝달(뫼)', '한밝달(뫼)'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며, 후일 백두산의 명칭 또한 광명사상(光明思想)과 밀접한 '밝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백두산의 이명(異名)인 '불함(不咸)', '개마(蓋馬)', '도태(徒太)' 등은 모두 '밝달' '한밝달'의 의미가 한자로 이기(異記)된 것 뿐이며 백두산이 명칭 역시 '밝달'-'백산(白山)'의 과정을 지나 정착된, 고귀한 정신적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하겠다. [대종교 자료]
 
[자료]백두산(아시아 산)[白頭山]
 
높이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 지린 성 안투 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과의 국경을 이룬다. 해방 당시까지 최고봉은 병사봉(2,744m)으로 측량되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발고도도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이다.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부석(경석이라고도 함)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을 의미한다.

백두산에서 화산분출이 있기전에는 지표면이 대체적으로 평탄했다. 지금으로부터 277만년전 백두산을 중심으로 지각에 큰 틈이 생기면서 최초로 화산이 분출되어 현무암 용암지대를 이루었다. 그후 화산활동은 중단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58만년전에 2차 화산분출이 있었다. 또 지금으로부터 44만년전에 있은 3차화산분출이 있었다. 또 지금으로부터 21만년전에 4차 화산분출이 있었다. 이 화산분출활동말기에는 화산구가 함몰되어 천지가 형성되었다. 지금으로부터 8만 7천년전 백두산 화산활동은 또다시 부활되었는데 이때 분출구는 여러 곳이다.이를테면 백두봉(장군봉) 백운봉,이 형성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 백두산이 빙하기기에 들어가서 각족 빙하지형을 형성하였다. 지금으로부터 5200년전,1915년전, 1400년전,1150년전,880년전에도 화산폭팔이 있었는데 주로 화산회,부석등이 분출되었다.역사서적에 기록된 화산분출시기는 기원 1702년과 1903년이다. (2002년연변대학에서 출판한 연구자료에서 수집)
 
백두산은 화산 폭발 때 생긴 흰색 부석으로 인해 산꼭대기가 사시사철 희게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챵바이?)이라 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하고 안개일수는 267일,폭풍일수는 272일정도이다. 항상 구름속에 뒤덮여 잠깐씩 얼굴을 내비치는 푸르른 천지의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따라서 6월초까지 눈이 덮여 있는 백두산 등정은 7월초,8월말 (여름경치,식물수직대,천지,산) 9월초에서 말까지(백두산 단풍,천지,산)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 최초의 이름은 〈산해경 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백산(白山)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 林下筆記〉 등의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 중심의 마그마 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보면 현재 북한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의 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측의 백두산 화산암의 분포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나, ,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에 속하고(최고봉 2,741m의 백암봉),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 있다. 따라서 천지 수면에서 장군봉 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 주변에 비고 약 500m의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음악자료:어둔밤 마음에 잠겨(상).지리산에 오시려거든(하)









온누리 08/12/26 [15:59] 수정 삭제  
  단군임검의 가르침-단군칙어(檀君勅語)

단군께서 개국하실 때 모든 백성들에게 내린 가르침의 말씀이 있었는데, 이를 단군칙어(檀君勅語)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환한님의 자녀 됨을 알아라.
② 너희는 영원토록 자손이 계승할 때에 터럭 만한 것이라도 다침이 없고 이즈러짐 없어라.
③ 너희는 한겨레로 일체가 되어 의좋고 정답게 서로 손을 잡고 같이 살아라.
④ 너희는 조심하라, 조심하라. 내 땀방울이 적시우고, 내 피가 물들인 강토에 혹여나 더러운 때 묻힐세라.
⑤ 너희는 네가 해야할 일은 너희 손으로만 하게 하라. 그리하여 각기 너희 할 직분을 지켜라. 너희 할 책임을 견뎌라.
⑥ 네가 가질 것은 남에게 주지 말고, 네가 할 일을 남이 하지 말게 하라.
⑦ 너희는 이 나라 기슭, 한군데도 빠짐없이 하늘 은혜와 땅의 이익 두루 받았음을 알라. 너희 것 삼아 쓸데로 써서 너희 생활이 항상 풍족하거라. 넉넉하거라.
⑧ 너희는 내가 오늘 훈칙한 이 알림이 할 일로써, 천하만민에게 고루 알리어 주거라.

또 단군임검의 가르침은 민족의 3대 경전중의 하나인 이라는 경전으로 전해진다.
국조모시자 08/12/27 [04:34] 수정 삭제  
  개쓰레가같은 종교들때문에 이나라가 후퇴하고있음을....
세상 어느민족이 국조 없는 조국이 있단 말인가....
그래 지금껏 왜곡된 역사 특히 조선을 당쟁과 권모술수를 치부하고 단군을 모시지 않는 시대로 가르친 죄...
문교부수장들, 특히 실무자들이 친일개새끼라서 그랬남....
외국 국빈들이 오면 국조상에 고개를 조아리게 해야만 그들이 우리 민족과 조국을 경배할 것...
과거 친일정구너은 그렇다쳐도 개대중이나 개무현이나 민족과 조국을 위한답시고 한일이 뭐가 있어....
쓰레기같은 자들이 두놈을 따른다고 하니 혀가 뒤집혀...
한(환)민족 08/12/27 [21:32] 수정 삭제  
  사대매국의 기운을 박멸하고 하늘로 치솟는 한민족의 의로운 민족기상이 서고 국가기강도 자연스럽게 서게 되고 민족통일과 유라시아-아메리카 한민족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민족혼을 상실하는데서 모든 혼란과 무질서와 부작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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