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개맹이 없이 살아 온 이십년 차 홀아비인 지공거사 토토씨가 어찌해서 한번은 문학관에 들어가 글쓰기 흉내를 내며 태평하게 세월을 죽이는데 간밤에 바람 불어 매실이 흐드러지게 떨어졌던 화창한 어느 날, 길에 나갔다가 신호위반하는 차량과 쾅!하고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 했는데 황급히 전화 돌려보던 119대원과 대학병원 외상센터 덕분에 겨우 앉은뱅이 신세를 면했다고 한다.
한 달 후, 중환자실에 있던 토토씨는 척추에 핀을 네 개나 박은 줄도 모르고 옮겨간 일반실에서 처음으로 간이 샤워를 하게 되었는데 거울 속에서 영화<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 쳐다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런 몸뚱이를 하고도 아직 비몽사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햇볕이 짱짱한 또 어느날 휠체어를 타고 조선족 간병인에게 밖으로 나가 섹스를 하자고 하였다.
간병인과 일층까지 섹스하러 나온 토토씨의 이런 황당 무례한 상황전개라니! 그러나 그에게 아주 사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 달 전, 토토씨가 북한에서 보도연맹 위원장을 하다 탈북한 소설가 한 사람과 대학로에서 막걸리를 마신 일이 있었다. 취기가 오른 토토씨가 ‘위원장 동무! 거 그러지 말고 참한 탈북 여성 있으면 한 사람 소개 좀 해 주시라요. 내레 고조 나이 더 먹기 전에 여자 분 냄새라도 한번 맡아 봐야 쓰갔시오.’ 하였다.
그 위원장이라는 별명을 지닌 탈북 작가와는 룸메이트가 되어 그의 탈출 코스를 답사한다는 명목으로 흥미를 가진 영화감독을 포함한 작가들과 작년에 두 번에 걸쳐 함께 중국 여행을 한 인연이 있었다. 어설픈 북한사투리로 농을 하는 토토씨에게
“진정으로 하는 말이오? 소개해 줄 에미나이야 있지. 혼자 넘어 온 여자들이 얼매나 많은데......그럴라믄 형님이 돈도 있고 힘도 좋아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토토씨. 솔깃했던 귀가 슬며시 위축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남자가 칼을 뽑았는데 하고
“아! 뭐 돈이야 나 혼자 아니 둘이서 웰다잉 할 때까지 남한테 손 안 벌리면 되는거고, 힘도 뭐시냐. 거 거시기......저축만한게 이십년인데 아직은 안 죽었지 암먼.”
하였지만 아까의 호기롭던 목소리는 힘이 떨어지며 안단테로 변해갔다.
토토씨는 토토씨의 술김에 뱉은 말이 탈북녀가 되어 리철순씨를 만났다. 처음 대면하는 날 그녀의 리얼한 북한 가족사를 들은 토토씨는 식당을 나와 은행에서 얼마간의 돈을 뽑아 주게 되었다. 그리고 한없이 고무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는데 헤어지기 전 던지던 그녀의 ‘최작가님(위원장)에게 들은 말 있습네다. 아파트에 혼자 있으니 심심하실 땐 아무 때나 들려 주셔도 좋습네다.’ 라는 말이 복음처럼 들렸다고 한다.
다음 날 토토씨로부터 첫 만남을 들은 위원장은
“아-참! 무슨 일이 그리 싱겁소. 바로 집으로 가자해서 침대에 던져 놓고 볼 일을!
야 형님, 영 허술하누만 야“
이 말에 토토씨는
‘이게 웬 떡이냐? 잘하면 다음번엔 이십 년 만에 치마끈 아니 허리띠 한번 풀게 생겼네.’하며 또 한껏 고무 되었다.
두 번째 만나는 날, 선물로 줄 시계를 챙기고 합정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리철순씨가 정류장으로 마중 나왔고 고기집까지 안내해 둘이서 실컷 먹고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를 던져 놓을 침대는 보이지 않았으나 기다란 소파는 있었다. 작은 책상위에 피씨가 있었다. 리철순씨가 컴맹 수준이라 하여 자연스럽게 이메일 보내고 받는 것까지 알려 주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너무 멀어서 제가 오늘 집에 가기는 어렵겠지요.’하며 휴대폰을 꺼내 집에 있는 동생에게 ‘여기 지방에 있는 친구 집인데 오늘 못 들어 갈 것 같다’고 톤을 높여 전하는 토토씨 였다.
그리고는 지난번엔 이북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남한으로 오기 전 중국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정말 비극이었고 토토씨에게도 비극이었다. 대다수 중국이나 남한에 특별한 연줄이 없이 북에서 강을 건너는 여자들은 리철순씨 처럼 되기가 열에 아홉이라는 것이었다.
목숨과 신변을 보호받기 위해 중국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상대가 중국에서는 가장 지질한 인생인 돈 없는 장애인이었다고 하였다. 감시가 심해 같이 산지 십 이 년 만에야 겨우 기회를 얻어 혼자서만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역시 장애인인 아들이 있는데 그 아이만은 데려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 돈 천 만 원만 있으면 데려 올 수 있습네다. 부지런히 돈 벌어야 합네다.”
하며 리철순씨가 토토씨를 빤히 보고 말했다.
그날 밤 토토씨는 리철순씨를 소파에 던져 놓지 못하고 허리띠 커녕 양말도 신은 채 혼자 잘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두고 온 장애인 아이와 천 만 원이 머리 안에서 떠나질 않는 것 보다는 허리띠 아래 바지 속에서 영 연락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마 잠수 탔거나 낙엽으로 변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호의 기회건만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토토씨는 리철순씨에게 만은 잠수를 타기로 하였다.
원래 낙엽의 전신은 고추였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척추 수술 이후 몸에 연결된 각종 줄에서 마지막 까지 달려 있던 소변 줄을 떼어 내던 날 토토씨가 환자복을 들추고 내려다보았더니 고추는 온데 간 데 없고 축축한 낙엽 한 장이 거기에 붙어 있었다.
낙엽은 소변을 내 보낼 능력이 없어도 몸뚱이 주인의 자존심은 철저히 짓밟았다.
방광에 물이 차면 낮이건 밤이건 간호사가 나타나 가느다란 호수 줄을 사정없이 요도에 끼워 넣고는 방관을 눌러 생맥주 한 조끼 분량을 쉽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제 밤은 간호사가 한 조끼를 가져가며 ‘퇴원 후에도 괄약근이 소생 못하는 환자도 계시니 토토씨도 직접 소변 줄 끼우는 법을 배우셔야 해요.’하였다.
침대에 누워 어제 간호사가 한 말을 곰곰이 되삭임해 보다가 앞으로는 물도 막걸리도 맥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말로 정리가 되자 토토씨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낙엽에게 이렇게 말했다.
“퇴원해서도 소변 볼 때마다 줄을 끼워야 한다니 차라리 우리 죽자”
‘그러지 뭐. 주인 잘못 만나 어차피 조졌는데......’
이럴 줄 알았는데 같이 죽기는 싫었는지 낙엽이 고추로 변하면서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닌가! 순간 토토씨는 눈물을 찔끔하며 ‘그래 고맙구나. 쉬하자 쉬-이’ 삼년 전에 돌아가신 토토씨의 어머니가 위에서 보았다면 울다 웃다 했을 것이다.
헐렁한 환자복의 바지를 사타구니까지 걷고 양팔도 가슴팍의 단추도 다 풀어 될수록 맨살이 많이 나오도록 한다. 그 녀를 향해 눈을 감고 기다린다. 그러면 그 녀는 서두르는 법 없이 스캔하듯 나의 몸을 가늠하고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나의 입술은 그 녀를 몹시 갈구하는 모양이 되어 파르르 떨기까지 한다. 입술을 그 녀에게 맡기고 얼굴을 살살 돌리면 그 녀는 오른쪽 목덜미며 왼쪽 귓불이며 부드러운 입술로 애무해 준다. 그 녀의 입술이 뜨겁다 싶으면 어느새 그 녀는 흰 구름으로 마스크하고 끝없이 갈구하는 나의 욕망을 부드럽게 토닥여 준다. 굴퉁이로 변한 허벅지며 종아리도 흉보는 법 없이 따뜻한 그 녀의 입술은 구석구석을 핥아준다.
나의 몸은 더욱 그 녀를 갈구하는데 달아올랐다 싶으면 홋 이불처럼 옅은 구름 뒤에서 전신을 애무해 준다. 이윽고 나의 눈가엔 절정과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섹스는 끝났다. 눈가를 살짝 훔치고 간병인을 부른다. <토토씨의 햇볕과 섹스하다에서>
한편 문병 온 친척들은 토토씨가 간병인과 함께 섹스하러 나갔다는 말을 듣고 역시 울다 웃다 하였고 어느 친구는 동창들에게 이렇게 얘기 했다.
“갸가 차허고 심하게 부딪쳤다는디 머리도 많이 상한 개비여.”
-끝-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연재
많이 본 기사
|